문화칼럼
2004-03-04
강바람이 매섭다. 대한이 '형님, 형님' 하는 소한 추위가 한강물도 유등천도 꽁꽁 얼렸다. 겨울잠을 못 이루는 반달곰처럼 끙끙대고 있는데 폭설 후에 거짓말처럼 '조용한 폭설'이라는 책이 사람을 반긴다. 경기도 파주 사는 신동근이라는, 같은 매체로 데뷔한 동인이 보내온..
2004-03-04
허연 속살을 드러낸, 가녀린 겨울 나뭇가지들을 보았다. 허나 안쓰러운 마음도 잠시, 벌거벗은 그 모습이 비로소 제 모습임을 깨닫게 되었다. 오래된 친구를 만나 대뜸 세상 돌아가는 얘기 좀 하자면 북풍 앞에 선 나목(裸木)인 듯한 느낌일 때가 있다.
딴은 허울과..
2004-03-04
그때만 해도 18세니 19세니 하는 게 없었다. 있었더라도 지금처럼 심각하게 따지지 않았고 따질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가설극장 영화라도 한 편 들어오면 아들, 손자, 며느리 사이좋게 감상하던 시절이니까.
수염이 막 돋기 시작한 형들을 따라 윤정희가 나오는 ‘순결’..
2004-03-04
내가 쓴 글을 읽고 웹사이트에 독자의견을 올린 임창복 님의 글을 뒤늦게 읽었다. ‘너무나 아쉽네요!’란 제목인데 현재 약 100명 남짓 조회한 것 같다. 사실, 이 문제에 관한 한, 살을 섞고 사는 부부간에도 견해가 다름을 전제해야 한다.
나 역시 글을 쓰면서나..
2004-03-04
‘대부(代父)’를 기억할 것이다. 중1 때 이 영화를 처음 본 이래 비디오나 TV로 몇 번 더 보았다. 이탈리아 이민 출신으로 미국 마피아 1인자로 성장한 주인공들의 갈등과 애증이 잘 묘사된, 대단히 혁신적인 갱영화다.
2편에서 프랜시스 코폴라 감독의 아버지가 가세..
2004-03-04
사람이 아무리 용뺀 재주를 타고났더라도 흉내내기는 ‘공부’의 알파이자 오메가이며 대가들의 붓끝은 그만한 혹독한 수련 끝에 나온 것이다. 남 모르는 고통 속에 무수하게, 잘된 걸 모델로 베끼고(摹), 정신을 옮겨 담아도 보고(臨), 참조하되 좀 새롭게 그려 보는 것(倣)..
2004-03-04
전통 선비사회에서는 아내에게 손찌검하는 사내, 아내 자랑하는 사내, 아내 등 긁어주는 사내는 삼불출로 치부되었다. 여자의 이름을 부르지도 말하지도 적지도 말라는 아주 고약한 역사가 우리에게 있었다.
기껏해야 ‘아무개의 처 모씨’가 고작이어서 하찮은 노류장화 기생..
2004-03-04
한때 남성학을 주창하며 남성해방운동을 거론한 젊은 대학강사가 반짝하더니 사라졌다. 남성들은 가부장제하에서 오랫동안 기득권을 누려온 대신에 엄청난 부담과 의무감에 시달린다. 일껏 힘센 척 하다가도 결국은 부양책임, 여성에겐 져서는 안 된다는 부담감으로 인해 괴로움이 이만..
2004-03-04
정치인들이 지역연고 찾기에 여념이 없었을 때 했던 말들을 곱씹어보면 정말 가관이다. 기껏 1년에 한두 차례 내려와 고향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그래도 양호한 축이다. 둘째딸을 시집보낸 곳, 무슨군 무슨리 몇 번지라는 처갓골을 내세우고, 그래도 남편이 ‘이곳’에서..
2004-03-04
어떤 사람은 사투리를 우리말의 보고(寶庫)라며 옹호한다. 어떤 사람은 또 의사소통을 가로막고 화합을 저해하는 방해물쯤으로 여기고 표준말과 표준발음을 들이댄다. 팔도의 사투리를 구사(?)하는 나 개인은 전자의 편에 선다.
때가 때인지라 멀리 나가지 않아도 새소리를..
2004-03-04
나는 베트남에 대해 남다른 기억을 갖고 있다. 그렇다고 파월 참전용사는 아니다. 혹, 전쟁이 최소 5, 6년만 늦게 끝났더라도 가능했을지 모른다.
학창시절에 참전용사들의 활약상을 모은 사진집을 만들었다. 백마부대 용사였던 사촌이 전선에서 꼬박꼬박 보내준 스냅사진으로..
2004-03-04
무지개가 몇 가지 색이냐고 물으면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가지라 한다. 프랑스에서는 세 가지로 대답하는 사람이 많다.
두 개의 라오콘 상(像)이 있다. 똑같이 바다뱀의 공격을 받고 그리스..
2004-03-04
마흔한 살에 왕이 된 에드워드 8세는 아서왕 이래 첫총각왕이었다. 즉위 후 에드워드는 자기 배필로 심프슨 부인을 지목했다. 그녀는 5년 전 대서양 항로의 한 선상에서 함께 춤을 춘 바로 그 처녀였다. 이 사실이 공표되자 영국은 긴급 각의(閣議)를 여는 등 걷잡을 수 없..
2004-03-04
매화꽃이 절정이다. 꽃그늘 속을 거니노라면 조지훈이나, 조선의 문학소녀 이옥봉이 아니라도 누구나 시인이 된다. 고까짓 신춘문예, 필요 없다.
섬진강변 매화골이 좋다기에 다녀왔다. 그 환장하게 고운 매화들의 시발(始發)이 일본에서 가져와 고향 뒷산에 심은 것이라고..
2004-03-04
무령왕릉 발견 및 발굴 30주년을 맞아 복원된 3차원 입체 영상을 보았다. 영구 폐쇄되기 전 조금은 음습한 무덤방 속에 들어가 본 이후 여지껏 남은 아쉬움을 얼마큼 달랠 수 있었다. 부여 왕릉 얘기 추가.
현재 미국과 이탈리아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像)을 레이..
2004-03-04
곧 ‘술 마시는 노래방’이 생긴다. 술집을 단란주점영업과 유흥주점업으로 통폐합한다는 입법예고가 나왔다. 특히 단란주점은 유흥 종사자 없이 술을 마시며 대화를 즐기되 때에 따라서는 노래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이 보건사회부(지금의 보건복지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에 비해..
2004-03-04
“좀더 즐거운 음악을 만드소서.” 은의 마지막 주왕(紂王;帝辛)은 유소씨를 토벌할 때 받은 미녀 달기에 혹해 ‘북리의 무’, ‘미미의 악’ 같은 음란한 궁중음악을 만들어 술과 노래로 지새다가 은 왕조를 말아먹었다. 그의 곁에는 듣기 좋은 말만 골라 하는 사람들만 남아..
2004-03-04
백화점에서 쇼핑하는 스타일을 분석하면 남자는 수렵(狩獵), 여자는 채취(採取)의 잔재가 남아 있다고 한다. 야행동물을 포획했던 남자, 딸기 따다 호두 줍다 했던 여자― 기발한 유추이지만 내 소견으로는 오랜 쇼핑 습성에서 오는 치밀함 내지 능숙함, 특유의 소비욕구 등이..
2004-03-04
인조의 계모후인 조대비의 상례를 놓고 남인․서인간의 싸움이 일어났다.
서인 송시열은 효종이 인조의 제2왕자이니까 계모후인 조대비의 복상은 1년이 맞다(기년설․朞年說)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남인 윤휴는 효종은 왕위를 계승하였으므로 장자나 다..
2004-03-04
이슬람 경전인 코란을 둘러싸고 해석이 구구하다. 코란뿐만이 아니다. 어떤 율법학자는 하이힐이 코란에 위배된다고 주장한다. 그 소리가 남성을 유혹해서라는 것이다. 맞는 것도 같고 틀린 말 같기도 하다.
누가 정통이고 어느 게 원조인가를 따지면 머리 복잡해지는 게..
2004-03-04
밤 12시20분.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하와이 공연 실황을 보고 나서 글을 쓴다. 와이키키 해변에서 부른 ‘Oops!…… I Did It Again', 'Baby One More Time'과 힘찬 율동은 그녀가 입은 비키니보다 시원했다.
‘TV or not TV,..
2004-03-04
나일 강만 보고 살아온 이집트인들에게 강은 당연히 남에서 북으로 흘러야 했다. 유프라테스 강은 그 반대다. 도올 김용옥이 기자가 된다니 메소포타미아에 도착한 3천년 전의 이집트 사람들처럼 어안이벙벙하다. 왕년에 교수에서 학생으로 변신했을 때처럼, 사람이 개를 문 것만큼..
2004-03-04
조선일보에서 조사한 장수자들의 라이프 스타일에는 시계추처럼 규칙적이고 잠을 하루 9시간 이상 자는 것 등이 포함돼 있다. 이들 중 13%는 흡연을 했고 94%는 보약을 먹은 적이 없다고 응답했다. 애당초 술을 안 마신 경우가 77%였고, 3분의 2는 담배를 피운 경험이..
2004-03-04
신춘문예 응모자 중에 84세의 할아버지, 95세의 할머니가 있었다. 이걸 보고 형편이 되면 문예지를 하나 만들어 50대 이상의 실버 ‘문학소년·소녀’들만 데뷔시킬 꿈을 가져 보았다. 그렇게 장수 시대를 구가하도록 하는 동시에 원고료는 ‘빵’과 ‘포도주’를 가붓이 해결할..
2004-03-04
신임 인사차 들른 여당 대표에게 전두환 전 대통령은 “달빛정책이라도 내놓고 햇볕정책을 비판하든지 해야 할 일”이라고 훈수를 뒀다. ‘햇볕론’은 70년대 이래 김대중 개인의 지론이었다. 집권 이후 ‘햇볕정책’으로 공식화하며 성과도 컸지만 ‘남남갈등(南南葛藤)’으로 표현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