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정통이고 어느 게 원조인가를 따지면 머리 복잡해지는 게 한둘 아니다. 지금 말하고자 하는 하이힐만 하더라도 화장실이 없는 베르사유 궁전이나 중세의 진흙탕에서 원형을 찾는다. 하나 진짜 이것을 만든 이는 프랑스의 구두 디자이너 로제 비비에였다.
오늘날 형형색색 뉴 트렌드의 뾰족구두 디자인이 속출하나 대부분은 그가 만들어놓은 것의 모방이거나 아류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구두들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박물관, 파리의 모드예술박물관 등에 전시돼 어엿한 예술품 대접을 받는다. 1954년, 그가 만든 하이힐은 문학의 초현실주의, 미술의 아르누보운동, 패션의 코코 샤넬과 함께 가히 ‘혁명’이라 쳐줄 만큼 파격이었다.
이후 반세기가 지났건만 하이힐은 무대 위의 관상용 미인뿐 아니라 말쑥한 숙녀의 대명사로 남아 있다. 가장 멋지게 뵈는 굽 높이로 7㎝가 정설이나 이제 이 미학을 거슬러 15㎝는 돼야 멋쟁이 축에 든다. 굽이 높으면 강하고 동적이어서 “전세계를, 남성을 지배할 수 있다”는 예찬론자도 나왔다. 엉덩이의 움직임이 커지므로 섹시하게도 보이기는 한다. 잘못하면 갈퀴 발, 망치 발을 만들며 근육통, 요통을 유발하는 한이 있어도, 그것이 ‘마음의 약’으로 말해지는 한 세상에서 절대로 사라지지 않으리라.
저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미망인 이멜다 마르코스는 구두박물관을 개관했다. 필리핀 민중 운동 당시 대통령궁에 두고 나온 수천 켤레의 구두 중 일부를 전시한 것이다. 그녀는 오로지 구두산업 발전을 위해 모았다고 끝끝내 우긴다. 환갑을 훌쩍 넘긴 소피아 로렌은 구두의 명장 블라디미로 보노라가 만든 구두를 신고 각선미를 과시하고 있다.
어디까지나 해석 문제다. 발에 꼭 끼는 유리 구두는 깨지기 쉬운 처녀성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대로라면 신데렐라가 무도회에서 황급히 빠져나온 이유는 그걸 간직하고 싶어서였다. 모시 요시노부는 다르다. 신데렐라와 왕자가 벌써 선을 넘었을 것, 그러며 신발이 벗겨지면 비처녀라고 놀림받는 민속놀이를 예로 든다. 구두 한 짝을 흘리고 간 건 그런 의미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코란이든 신데렐라든 하이힐이든 매사 보기 나름인 것 같다. 회사 옛동료의 결혼식에 다녀온 옆사람이 이 신발을 신고 왔다. 하이힐이 대유행일 것 같다. 아니, 올 가을이 아니라도 언제든 다시 유행할 것이다. 쓸데없는 참견인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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