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역시 글을 쓰면서나 쓰고 나서나 엄격한 자기검열로 제대로 맥을 짚지 못했다는 자책 때문에 지금껏 ‘너무나 아쉽네요!’였다.
자진해서 필자의 정체를 벗긴다면 정치·사상면으로 중도(中道), 경제면으로는 보수, 문화․예술면에선 진보라 자평한다. 이 기준은 개개 사안에 따라 달라지며 다른 건 놔두고 자연인으로서의 성향임도 밝힌다. 만약 기자 신분 아닌 문인의 자격으로였다면 활달하게 알록달록한 문체로 선생 편에 가세했을지 모르겠다.
가재는 게 편이어서가 아니라, 단지 상식적인 국가기관이 예술을 재단하는 행위 자체를 달가워하지 않는 평소의 소신 때문이다. 만화가 이현세 구속 때도 반대 투고를 했던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독자 대중 앞에 서면 공인(公人)이라는 점이 기자와 여느 회사원의 차이일 것이다. 오피니언 리더로서 여론을 선도하거나 갈등을 중재해야 하고 때로 사회적 담론을 창출해야 한다.
동일한 접근법으로 김선생에게서 예술가가 먼저냐 교육자가 먼저냐의 우위를 따지는 일은 닭과 달걀의 관계처럼 순환론에 불과하겠지만, 지구가 늘 둥근 것처럼 김선생은 늘 ‘선생’이다. 그들 부부의 나체가 무엇을 표방하건 해석의 자유이며 십분 존중한다. 하나 누가 만일 뒤통수에 권총을 들이대고 더 “솔직히 말해!” 한다면 탐구하고 싶지 않으며, 내 취향은 아니라고 하겠다.
더 묻는다면 양아치 집단의 저질 외설연극보다 훨씬 건전하고 리얼리티를 빙자한 포르노에 비해 너무 싱겁다. 그러나 처벌할 가치가 있는 음란성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말하겠고, 배심원이란 걸 만들어 세워주면 그땐 비판적 옹호를 가하겠다. 한 가지, 임창복 님의 언급대로 정치적 논리로 의심하는 것은 또 다른 정치 논리일 수 있음을 정중히 지적한다.
‘신체의 정치(body politics)’ 개념이라면 모를까 타당하지 않다. 이는 배우나 슈퍼모델의 몸, 영화나 광고 등 이미지의 세계에서 작용하는 힘을 지칭하는 것으로, 쓰임새부터가 확연히 다르다.
좋은 의견에 감사드리며 더 많은 참여를 바란다. 비공개를 원하는 분은 전자우편을 이용하면 된다. 졸지에 앞줄에 서게 된 잔 타크처럼 된 김선생에게는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의 목적지에 무사히 항해해 도달하기 바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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