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라오콘 상(像)이 있다. 똑같이 바다뱀의 공격을 받고 그리스의 것은 ‘신음’을 내는데 로마의 것은 ‘고함’을 지른다. 고통 속에서 차분함을 유지할 줄 아는 사람들과 모르는 사람들의 차이라면 속단이 아닐는지. (중복 확인)
전후(戰後), 일본인들이 ‘천황’이라 부르는 ‘사람’은 맥아더에게 무조건 잘못했으니 어떠한 처벌도 감수하겠다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런 사람을 일본인들은 존경한다. 비웃을 일이 아니다. 백성들이야 죽거나 말거나 혼자 살겠다고 도망간 우리 나랏님들과 비교하면 꺼림칙해지니 말이다.
‘일장기가 잘 안 보임.’ ‘기미가요가 국가(國歌)라는 설명이 없음.’ 문부성 검정담당관이 출판사에 보낸 ‘참고 의견’이란 것들이다. 결국 편집자는 일장기가 붉게 드러난 사진을 실었다. 이밖에 국가주의를 부쩍 강화하는 징후는 또 있다.
일본 중의원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와 간 나오토 민주당 간사장이 ‘show the flag'[쇼우 더 플랙]의 해석을 놓고 입씨름을 하는 그야말로 ‘생쇼’를 했다.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일본 대사에게 전한 말이 빌미였다. 그네들은 이 말에 ‘깃발을 보여라’, 즉 ‘자위대를 파견하라’는 식의 자가발전적(自家發電的)인 해석을 계속했다. 멋도 모르고 흥분한 뉴스 앵커는 “자위대 함정이든 항공기이든 많이 보내 일장기를 보여야 한다”고 핏대를 세워 사람을 웃긴다.
그러나 논객 간 나오토는 달랐다. 그는 사전(辭典)을 총리 면전에 디밀며 ‘태도를 선명히 하다, 지지를 보여 주다’라고 적시하고서, 깃발은 무슨 얼어 죽을 깃발이냐며 따졌다. 이 말에는 ‘자기 이익을 주장하다, 얼굴을 내밀다, 외국항을 공식 방문하다’ 등의 뜻도 들어 있다. 어쨌든 논란이 계속되자 하워드 베이커 주일 미 대사가 “이는 미국의 관용구로, ‘태도를 분명히 하라’는 뜻 정도였을 것” 이라고 한 수 가르칠 정도였다.
사랑은 불어로, 우정은 이태리어로, 기도는 스페인어로, 싸움은 독일어로 하는 게 효율적이다. 이래서 장사엔 영어가 좋다고 하는가 보다. 중요한 건 뜻풀이를 파고드는 해프닝에 있지 않다. 핑곗거리를 만들어서라도 히노마루(日の丸․일장기) 펄럭이며 감이야 배야 하고 싶은 그들의 본심이다.
우리가 남의 나라 깃발에 이다지 민감한 이유는 그것이 군국주의와 아시아 정벌의 심벌이어서다. 미국 하원은 성조기 모독을 금지하는 헌법 수정안을 통과시켰다.
우리 일각에서는 태극기가 중국 주역사상이므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알베르 카뮈가 그랬던가. “정의가 내 어머니에게 총부리를 겨눈다면 나는 어머니의 편에 설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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