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TV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는, 기자가 절대로 기사화하지 않을 테니 자기한테만 얘기해 달라는 것, 국회의원이 국민의 ‘심부름꾼’이 되겠다는 호기로운 말도 ‘직업별 10대 거짓말’로 끼워넣고 있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바람직한 대통령과 국민의 관계는 ‘고용인’ 대하듯 하면 된다고 말했다.
푸틴은 고맙긴 하지만 러시아판 용비어천가를 그만 부르라고 요구했다. 고향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자신의 흉상을 제작하는가 하면, 그가 잠깐 방문했던 곳이 관광지란다. 뿐만 아니다. 자신이 기대어 소원을 빌었다는 나무, 목을 축이던 온천수, 오이를 산 가게까지 기념하는 것은 아무래도 낯간지러웠던가 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재임시 전남도청 앞에 기념식수를 했다. 얼마 후에 그 나무는 뽑히고 그 자리에 기념탑이 섰다. 센 바람에도 움직이니 아니하므로, 꽃이 좋고 열매도 많은 (용비어천가 제2장) 뿌리깊은 나무가 아닌 때문이다. 그의 시대, 용비어천가를 부르던 뭇 사람들은 지금도 구설에 오르고 있다.
세종 때의 ‘오리지널’ 용비어천가는 당시 유학의 정치 철학에서 존중하던 사실적 관심이 충만하다. 고대 건국 서사시 이래로 영웅의 시련과 투쟁을 찬양하던 전승은 버리지 못했으나, 당대 가치관을 적절히 조화시켰다는 점에서 오늘날 부르는 싸구려 용비어천가와는 품격이 다르다. 곤경에 몰린 청와대는 제5장(임금 노릇하기의 조심스럽고 힘듦이 저러하시니)을, 그 반사적 이익만 노리지 야당 노릇도 못하는 야당은 정권 탈환의 호기라며 제6장(상 나라의 덕망이 쇠퇴하매, 주 나라가 장차 천하를 맡으실 것이므로)을 목놓아 부른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끊이지 않는 용비어천가는 이 무슨 어처구니인가. 7년 평검사 경력으로 등극한 것이 감개무량했는지 모르되 ‘한 목숨을 다 바쳐 충성’은 도저히 민주공화국 법무장관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요, ‘태산 같은 성은(聖恩)’ 운운은 건국의 유구함과 하해 같은 성덕을 찬송한 것이나 진배없다. 이른바 ‘충성 메모’ 파문은 43시간만에 물러난 장관에게나, 임명권자에게나 큰 짐으로 작용했다.
이제 용의 노래를 그치자. 문체가 안 맞고 외경스런 15세기식 송축가일랑 집어치우자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용비어천가의 마지막 125장, 그 한 자락으로 끝을 맺고자 한다.(현대어역·번안은 필자)
‘그러나 아무리 위대한 대통령이 대를 이으셔도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다스림에 부지런히 노력하셔야 국권이 더욱 굳건해질 것입니다. 후임 대통령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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