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분야에서건 자기 뜻을 실현하며 살 수 있으면 얼마나 바람직한 사회이겠으며, 노후 걱정 없이 무병장수하면 무엇이 더 소망스러우랴. 나이먹는 게 소원인 아이들이 있는 반면, 그게 두려워 떡국이나 동지팥죽 보기 싫은 사람도 있다. 게다가 유전자 지도와 함께 ‘맞춤 수명’ 시대가 오고 단명(短命)유전자 활동을 막는 장수약이 곧 나온다니 미련 또한 많을밖에 없다.
영화 속처럼 생각까지 꼭같이 복제된 가짜가 있어 내가 너인지 네가 나인지 모르겠다면, 아내나 애인도 하나고 누군가 자기 존재를 양보하든 포기하든 해야 한다면 어떨까? 아, 차라리 지금처럼 살다가 웃으면서 이 세상을 하직하련다.
김동리의 ‘무지개’를 보면 소년이 아름다운 무지개를 좇다가 어느덧 힘이 부쳐 “무지개란 기어이 사람의 손으로 잡지 못할 것인가!”라며 한숨지을 땐 백발 노년으로 변해 있다. 우리가 생각을 바꾸면 허무랄 것, 억울하달 것도 없다.
10년, 15년을 땅 속 굼벵이로 지내다 겨우 한 주일 맴맴거리고 일생을 마감하는 저 매미처럼 우리 존재를, 살아있음을 구태여 부르짖을 필요도 없다. 예수의 짧은 생애도 거룩하지만, 당시로선 장수인 70을 살고 불혹(不惑)이니 지천명(知天命)이니 인생을 담담히 총정리한 공자도 참 성인이다.
앞으로 살 수 있는 기대 수명은 45세인 경우 남자 29.5년, 여자 35.9년, 65세인 경우 남자 14.1년, 여자는 18년으로 나왔다. 통계청 발표로는 우리 평균수명이 남자 71.7세, 여자 79.2세로, 10년 전보다 4년 넘게, 20년 전에 비해 9~10년 늘어났다 한다.
그래 봐야 평생 잠자고(24년), 일하고(13년), TV 보고(10년), 먹고(4년), 목욕하고(1년), 전화 걸고(10개월), 화장실 다니고(9개월), 그리고 섹스(5개월), 기타등등. 차(車) 포(包) 떼고 졸(卒) 죽고 어쩌고 나면 얼마 남지 않는다. 그게 인생이겠거니 하면 그만이지만.
대충 보아 성경도, 불경도. 코란도, 원불교교전도 천하보다 사람이 귀하다고는 하나 이 땅의 노인들에겐 생존의 길이가 마냥 달갑지만은 않다. 세태를 보면 40대만 되면 장래가 주체스러워 다 달아나는 판에 장차 늘어나는 실버 세대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 매년 3, 4개월 씩 수명이 증가 추세임을 진시황이 알고 펄펄 뛰지나 않을지, 그것이 알고 싶고 또 염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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