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변 매화골이 좋다기에 다녀왔다. 그 환장하게 고운 매화들의 시발(始發)이 일본에서 가져와 고향 뒷산에 심은 것이라고 듣고는 적잖이 서운해한 일이 있다. 이 시간에 흐벅진 매화를 보고 있다면 십중팔구 일본 개량종일 게고, 매실즙을 마신다면 대만산(産)일 가능성이 크다. 추워도 향기 안 판다고 읊조린 매화는 본디 삼국 시대에 중국 스촨(四川)에서 전해온 것들이다.
문익점의 붓두껍 속 목화씨 얘기는 꺼낼 나위조차 없겠다. 대구 사과는 아담스 선교사가 자기 나라 미국에서 가져온 사과씨 하나를 하숙집 마당에 기념삼아 심은 것에서 비롯됐다. 고려의 자생 복숭아는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이 남긴 대로 크기가 작고 맛이 별별찮다.
이제는 나라꽃인 무궁화조차 값싼 중국산이 늘어나 뜻있는 사람들은 한걱정이다.
앞에서 일본 돗토리현에 핀 무궁화꽃을 얘기하면서 단군과 함께 이 땅에 출현했다고 썼지만 뿌리를 되짚어가면 소아시아 지방이 원산지이다. 봄이면 봄꽃제를 한다고 곳곳서 아우성일 때마다 연례행사처럼 도마 위에 올라 지목되는 꽃이 벚꽃이다. 이상하게도 같은 왕벚꽃이라도 한라산 기슭이나 해남 두륜산에서 보면 우리 것 같고 일본 가서 보면 일본 것 같다.
여북하면 독립운동을 하던 이승만 박사가 미국 의회에까지 가서 “이것은 우리꽃입니다” 하고 진정을 다 했겠는가. 어느 쪽이건, 일본이 한국을 점령해 한국인의 혼을 빼기 위해 고궁이며 학교에 심은 나무가 왕벚꽃나무임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 눈에 얼른 그 맵시로 보아 해바라기(북미), 장미(코카서스), 선인장(멕시코)처럼 외래종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영 아닌 것도 부지기수임을 알 수 있다. 섭섭하게도 국화 가운데 좀 반반한 것은 재래종이 아니요, 고려 충숙왕이 원나라 공주에게 장가들어 귀국하면서 가져온 것이다.
전에는 부잣집 정원에 많았던 모란과 작약, ‘나의 살던 고향’에 핀 복숭아꽃 또한 중국이 고향이다. 살구꽃과 아기 진달래는 한국이고!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한창일 뿐 아니라 ‘울밑에 선’ 봉선화(=복숭아)마저 인도, 말레이시아, 중국 등지가 원산이며 채송화의 진짜 고향을 찾으면 브라질인 것이다.
어찌 꽃만일까? 우리가 우리 거라고 알고 있는 많은 것들이 우리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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