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껏해야 ‘아무개의 처 모씨’가 고작이어서 하찮은 노류장화 기생일망정 예명만을 불렀던 것이다. 삼국이나 고려에 거슬러 올라가도 분명히 여자의 이름이 있었지만 죄를 짓기 전에는 구경하기 힘들었다.
언어 결정론에 비추어보자면 남성 우월주의의 입장이라 할 수 있다. 하기는 요새도 결혼하고 직장생활을 하지 않으면 일단 이름이 잊혀지기 십상이다. 때때로 한집에 사는 시어머니 이름을 잘 몰라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한다.
옛날에 여아인 경우 이름은 지었지만 되도록 큰아기, 작은아기라 부르기 예사였다. 시집가면 집안 동서들끼리 남편 성을 따라 이서방댁·김서방댁 등으로, 일반은 친정 지명을 따라 부산집․전주집 등으로 불렀다.
출세한 남편 덕에 정·종이품 문무관의 아내가 되어 명부(命婦) 작호를 받더라도 정부인(貞夫人)으로 변했을 뿐이었다. 성삼문의 아내 이름은 차산, 어머니는 미치였다. 유응부의 아내는 약비, 박팽년의 아내는 옥금, 하위지의 아내는 귀금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이 이름들이 오른 것은 오로지 남편이나 아들이 사육신의 중심인물로서 역적으로 몰린 신분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어쩌다 부부간의 호칭이 사람들의 입줄에 오르내리기도 한다. 50을 넘긴 부부가 서로 ‘자기’라고 부르는 걸 들었을 때는 참 금실 좋은 부부구나 싶어 다시 보아진다. 프랑스의 어느 대통령은 부인을 ‘암사슴’이라 불러 화제가 되기도 했다.
금혼식을 맞은 김영삼 전 대통령 부부를 위해 이수성 전 총리가 잔치를 베풀어주었다. 이 자리에서 김 전 대통령은 결혼 50년을 돌이키며, 괴로운 시간이 길었어도 지탱했던 힘은 “명순씨(부인 손명순 여사) 때문이었다”고 밝혔다고 한다. 그러면서 둘만 있을 때는 ‘명순이’라고 부른다고 공개해 좌중을 웃겼다. 평소에 ‘원종이’, ‘삼재’ 하고 사람을 곧잘 부르는 스타일로 보아 그러고도 남으리라 짐작되지만, 공인으로서 그 공과(功過)를 떠나 한 자연인으로서의 면모가 느껴진다.
그 안에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만 듬뿍 담겨 있다면 부부 사이에 명순이든 영애든 뭐 어떤가.
남들이 삼불출이라 하든 팔불출이라 하든 무슨 대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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