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민물, 그 흐르는 본바탕에 노니는 이쁜 고기떼와 물풀"과 "얼음장 가리고 남몰래 흐르는" 강물의 눈맛을 좀 더 선연히 즐기고 있다. 빙어 낚시라도 하자는 권유도 있지만 저 예쁜 고기들을 왜 잡으란 말이냐.
내가 말해온 관계(네트워크)의 즐거움이란 고작 이런 유(類)다. 하다 못하면 '접속'의 한석규와 전도연 같은, '유브 갓 메일'의 톰 행크스와 멕 라이언 같은 관계라도 괜찮겠다. 그렇지만 샌드라 불록이 냉동에서 깨어난 20세기 남자 실베스터 스탤론에게 "비위생적인" 방법 대신 사이버 섹스를 권하는 '데몰리션 맨' 속의 그것처럼 참 걱정스러운 관계도 있다.
미국 월가의 주식투자를 일시 마비시킨 것은 텔레비전의 사이버 섹스 특집 탓이었고, 한 조사에 따르면 젊은 부부의 가정파탄의 3분의 1이 직․간접으로 인터넷과 관련이 있다. 여기서 네트워크의 유용성은 사용자의 수와 비례한다는 메카프의 법칙(Metcalfe's law)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신문 매체나 인간관계도 하나보다 둘이 재미있고 담쟁이넝쿨처럼 얽히고설켜야 재미가 있다. 회원수가 많은 카페가 더 아기자기하고 손맛 좋은 식당은 기다려서 먹어야 하는 불편쯤은 감수해야 한다.
희소성의 가치가 때로 무시되는 게 또한 인터넷 세상의 논리다. "두고 보세요. 네티즌이 일낼 겁니다" 해도 "까짓 컴퓨터로 장난질하는 젊은이들 몇몇"이라며 시큰둥해하다가, 우리가 미국이 인정하는 인터넷 강국임을 깜빡 잊고 지내다가, 언론을 제4부라 하면 사이버 공간은 제7대륙이다. 감히 나는 5대양에 인터넷이란 양양한 대양을 보태 6대양 7대주로 명명하려 한다. 로그인의 로그(log)는 '항해'를 뜻하니 닻을 올려 항해(인터넷 사용)를 개시하는 게 로그인이고 끝내는 게 로그아웃이다. 마음에 들거나 안 들거나 관계가 지속되는 한 로그인을 해서 한 배를 타고 간다.
그런데 말이다. 중국 고전 산문인 담원춘의 '배는 그만 두고 뗏목을 타지'라는 구절을 읽으면 막혔던 기가 탁 트인다. 수천 년 전에도 한 템포 늦춰 세상을 살자는 선인들이 계셨다. 요새로 치면 피에로 쌍소 같은 사람들이다. 다시금 그 중용의 미덕은 수천 년을 뛰어넘어 픽션(허구)과 팩트(사실)가 뒤엉키고 고속철도가 시속 300㎞를 넘나드는 현세에서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국정은 (아직 타보진 못했지만) 기관사가 졸면 멈춰 서는 장치가 있는 고속철도와는 다르다. 말레이시아에서 골프 치다 실수하니 그쪽 사람들이 "괜찮아 샷!"을 외치더라는 얘기도 그 얘기다. 실수할 때마다 "괜찮아"를 연발하는 한국인들을 빈정거린 것이다.
새정부 10대 국정 과제를 중고품으로 비하하는 사람들, e-청와대 계획이나 인터넷 장관 추천제를 의심쩍게 째려보는 사람들의 심정도 이와 얼추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하면 "괜찮아 샷"이나 외칠 때가 아닌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강은 얼었어도 강심엔 물이 흐르고 고기가 숨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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