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은 허울과 꾸밈이 없다는 얘기인 것이다. 디오니소스 같기로 소문난 어떤 친구는 도참(圖讖) 같은 발언으로 주위를 서늘케 했다. 종교는 저 세상을, 혁명은 이 세상을 낙원으로 만든다는데, 우린 개혁한다면서 지옥으로 만들 심산이냐는 투였다.
‘무식쟁이’임을 자처한 어느 분을 통해서는 국회의사당처럼 저 높은 곳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저 필부필부(匹夫匹婦)의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 같은 것임을 재삼재사 확인했을 뿐.
그렇다. 본의 아니게 내가 집약한 민심을 전하면 이렇다. 비유적으로 말해 무도회는 끝났으니 가면을 벗으라는 것. 지역구의 지지자나 우호층의 목소리만 가려 듣고 실패한 정책 앞에서 너도나도 ‘네 탓이오’에만 바쁜 정치권, 누가 국민이고 뭐가 민심인지도 헷갈리는 의원들에게 이제 민심은 없다.
그래서 그들의 공허한 귀향 체험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국민들의 표정이 좋아지지 않았는데도 국민들의 표정이 좋아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불행은 다른 데 있지 않았다. 법도 아니고 정치도 아닌 것들이 살아갈 의욕과 가치관마저 몽땅 짓뭉개는 데 있었다. 그들이 바라는 건 타이탄신(神)처럼 어떤 거대하고 힘센 데 있지 않았다. 하릴없이, 정말 하릴없이 나는, 상생을 말하며 졸렬한 상극의 서바이벌 게임이나 벌이는 그들 탓에 ‘국민’이 ‘동무’나 ‘인민’처럼 금기어가 되지 않기만을 바랐다.
대통령이 도대체 왜 저러느냐. 좀 심하게 비유해서, 미륵불(彌勒佛) 같은 존재로 모셔오던, 그런 사람들조차도 등을 돌린다면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어떻게 사는가에 지친 나머지 왜 사느냐는 의문마저 잊고 사는 국민들이 보다 참을 수 없는 건 1등칸에 탔다고 3등칸을 깔보는, 인간의 인간에 대한 오만 아니겠는가. 타이타닉의 그들처럼.
그러나저러나 산등허리에서 찬바람 맞으며 외로이 서 있는 나무들이 더 따습게 다가오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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