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문예 심사를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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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문예 심사를 마치고

  • 승인 2004-03-04 00:00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신임 인사차 들른 여당 대표에게 전두환 전 대통령은 “달빛정책이라도 내놓고 햇볕정책을 비판하든지 해야 할 일”이라고 훈수를 뒀다. ‘햇볕론’은 70년대 이래 김대중 개인의 지론이었다. 집권 이후 ‘햇볕정책’으로 공식화하며 성과도 컸지만 ‘남남갈등(南南葛藤)’으로 표현되는 보수 진보의 갈등이나 안보 불감증은 그 그림자였다.

지금도 흘러간 노래처럼 친북좌익 세력의 척결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있다. 한국어가 유창한 지한파(知韓派) 일본 기자 구로다 가쓰히로는 ‘월간조선’ 대담에서 한국이 좌경화됐기에 정상으로 가는 일본이 우경화로 보인다는 논리를 편다.

어느 쪽이건 ‘자유’이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안보’니 ‘호국’이니 입만 뻥끗하면 ‘반통일’로 잡도리하는 풍토에는 안보나 호국이 설 자리가 없다는 점이다. 또, 만약에 자석처럼 질질 끌려다닌다든지 가령 “충격 줄 수 있는 깡패방식”이나 데마고그(선동 정치가)와 데마고기(선동, 선전)만 있는 한, 통일의 길은 멀고도 아득하다.

알다시피 우리 세대는 기껏 북한을 뿔 달린 도깨비로나 배웠고 인식했다. 전시된 옛날의 반공 포스터를 보았더니 참 격세지감이었다. 그래도 이념상의 혼란은 덜했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 어떤 젊은이는 맥아더가 원망스럽다는 주장을 편다. 그가 인천상륙작전만 감행하지 않았어도 통일되었을 거라는 요지였다. 그 농담 같은 통일론에 대꾸할 가치조차 느끼지 않는다.

보병 제32사단에서 호국문예 대회의 심사를 하고 왔다. 소회를 느껴 볼 겨를도 여유도 없었으나 하찮은 들꽃, 발길에 차이는 돌멩이 하나라도 따뜻한 시선으로 보면 그렇게 그윽하고 경이로울 수가 없음을 확인하는 기회였다. 심사 내내 기대했던 건 차분함이나 세련된 기교보다는 어린 새싹다운 참신한 시각이었다. 좋은 작품도 많았으나 주제와는 동떨어져 너무 서걱거리는 생각들, 부적절한 인용과 상투적이고 산만한 전개, 특히 안이한 글쓰기가 눈에 거슬렸다.

학교에서 숙제 검사를 하면 닮음꼴이 많다고들 한다. 독후감이나 일기까지 인터넷에서 퍼오거나 퍼나르며 손가락이 짓무르도록 예쁘게 쓰는 수고를 할 것도 없이 성능 좋은 프린터가 국화빵처럼 반드러운 글을 찍어낸다. 이제 우리 어린이들에게 제대로 된 국가관과 함께 글을 쓰려면 공평하고 정직해야 함을 가르쳤으면 한다. 30년 전처럼 ‘구름은 요술쟁이’, ‘거울은 흉내쟁이’ 투의 흉내내기 동시는 여전하며 산문은 거짓말 쓰기가 된 듯해 안타깝다.

남의 경험까지 베끼는 세태에서 자기만의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한다는 것은 좋은 공부이면서 효과적인 인격 수양일 수 있다. 이런 오프라인 행사가 좀더 많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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