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글은 이 땅에 노래방이 출현한 지 얼마 후인 1992년 7월 31일 ‘단란주점’의 출현을 예고(?)하며 필자가 쓴 것이다. 그 직후, 곽재구의 책에 남도 소포리 한남엽의 집에 있는 ‘노래방’ 이야기가 나와 흥분한 적이 있는데 여기 옮겨 본다.
―추수가 끝난 시점에서부터 다음해 농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노래방에 모여 함께 소리를 배우고 익혔다. 언제부터 노래방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느냐고 물었더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고 그냥 그렇게 자연스럽게 불러 왔다고 한다.
그러니까 지금의 일본식 가라오케(‘가라’는 空=가짜, ‘오케’는 오케스트라) 노래방 말고도 훨씬 이전에 진짜 ‘노래방’이 있었다는 것이다. 노래, 이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춤, 상고사를 들추지 않더라도 우리 민족은 확연히 가무음곡에 능하다.
무당이 신과 감응하고 악령을 달래는 데도 청신무, 오신무, 송신무, 세령무 등 춤을 수단으로 했다. 보다 인류학적으로 춤동작은 풍요와 다산의 상징이기도 하다.
잠깐, 새들의 춤을 관찰하면 참 재미있다. 앞뒤로 ‘턴’하고 전후좌우 ‘슬로슬로퀵퀵’하는가 하면 ‘헤드뱅잉’을 하는 등 인간의 춤과 유사한 구석이 아주 많다. 이것을 세밀히 관찰하면 이 모두는 어떤 성적인 예비동작임을 알 수 있다.
구태여 이것을 인간과 연결짓자는 게 아니다. 간밤에 케이블 웨딩TV의 댄스 강습을 보고 인류사상 최초로 남녀가 배를 찰싹 붙이고 추는 춤인 왈츠야말로 데스몬드 모리스가 규정한 ‘노골적인 친밀성’이라는 확신이 들었을 뿐. 내미는 손, 쓰러질 듯한 타인의 몸을 지탱하며 돕는 것처럼 보이는 트릭들이 꼭 그렇게 보였다.
그간 ‘춤’ 하면 부정적으로 ‘춤바람’과 거의 동의어처럼 쓰였던 게 사실이다. 요 근래 볼룸댄스가 댄스스포츠로 이름표를 바꿔 달고 카바레 등 음습한 곳에서 양지로 나오는 현상은 바람직스러워 보인다.
춤을 ‘추어올리다’에서 나왔다고 본다면, 하늘에 치닿으려는 상승 의지인 것도 같다. 그러한 신명에서 추어올려졌을지라도 관광버스춤이라는 장르는 위태롭기 짝이 없다. 경찰에선 이 말도 안되는 집단 무(舞)의식을 단속한다고 단단히 별렀다. 관광 시즌마다 많은 인명을 앗아간 사고 이면에는 늘 관광버스춤이 있었다.
춤이라는, 인류 최초의 예술 양식에 딴지를 걸고 싶은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 단지 안전한 곳에서, 건전하게 추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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