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생의 시네레터
2024-11-14
넓은 들 한복판에 오래된 나무가 커다랗고, 멀리서 오래 바라보는 카메라 프레임 안으로 그 들판 길을 늙은 할아버지와 다 성장한 손자가 걸어갑니다. 걷기는 같이 걷지만 그들이 바라보는 길은 다릅니다. 할아버지는 손자가 자신이 세운 두부 공장을 물려받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2024-10-24
전편만 한 속편이 없다는 말이 있지만 이 작품은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전편과는 다른 접근을 통해 새로운 면을 보여줍니다. 우선 놀랍게도 뮤지컬 형식을 접목시킵니다. <라라랜드>(2016) 등이 그러하듯 뮤지컬 영화는 일반 서사 영화보다 환상성이 강조됩니다. 이 영화는..
2024-09-19
형사 서도철은 베테랑입니다. 전편에 이어 영화의 중심을 잡고 갑니다. 빼어난 촉, 여건을 가리지 않는 사명감, 몸을 사리지 않고 범인을 잡는 스타일도 여전합니다. 문제는 신입 형사 박선우입니다. 범인을 잡는 데서 그치지 않고 법의 테두리를 넘어 보복하는 일도 서슴지 않..
2024-08-22
하늘을 나는 직업의 남자가 있습니다. 공부도 잘했고, 실력도 있어 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최고의 항공사에서 스카웃해 간 사내. 하늘은 그의 일터이며 커리어를 빛내 주는 곳입니다. 그러나 사람인 이상 하늘을 날 수만은 없는 법. 땅에 내려온 그 사내 정우는 어설프기..
2024-08-01
<태풍클럽>은 1985년 작품을 4K UHD로 복원한 영화입니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이루어진 시점이 1998년이니 발표 당시 우리는 이런 영화가 있는지 알지도 못했습니다. 감독인 소마이 신지(1948-2001)는 오즈 야스지로, 구로사와 아키라, 이마무라 쇼헤이 등..
2024-07-11
멀리 선 카메라가 뛰고 있는 청년을 잡습니다. 드넓은 벌판 위로 쏟아질 듯 별빛이 무성합니다. 낭만적이어야 할 장면이건만 청년은 도망갈 연습을 합니다. 곳곳에 지뢰가 있고, 철조망과 감시 초소, 추격조가 있습니다. 돌아오곤 다음 날 밤 또 그렇게 나갑니다. 쉽사리 이룰..
2024-06-27
너무나 잘 알려진 거대한 역사를 배경으로 별로 알려지지 않은 소소한 개인사가 펼쳐집니다. 그것도 아주 근접한 장소를 두고서. 담장 너머 일은 비극적 괴성과 암울한 연기로만 원경으로 보입니다. 근경으로는 주인공 루돌프 가족의 낙원과도 같은 집이 그려집니다. 아우슈비츠 포..
2024-06-13
영화는 판타지와 현실을 넘나듭니다. 판타지는 최첨단 AI 기술로 만들어낸 가상의 세계 원더랜드입니다. 통신 서비스가 진화하여 주문자 요구 사항을 반영해 현실에 핍진하도록 만들어냅니다. 남은 자는 현실에, 떠난 자는 원더랜드에 있습니다. 어느 만큼이 현실이고, 어느 만큼..
2024-05-30
유태계 독일인 철학자이자 평론가 발터 벤야민은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작품」(1936)이라는 유명한 논문에서 아우라의 소멸을 말했습니다. 사진과 영화처럼 근대적 복제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더 이상 어느 한 장소에 존재하는 원본의 위상과 가치가 의미 없어진 것에 대해 긍..
2024-05-09
영화는 제목과 같이 일정한 공간에서 벗어나는 것을 모티프로 합니다. 그 공간은 위치를 점한 3차원의 물리적 상태이기보다 다분히 권력이 작동하는 정치적 성격이 강합니다. 스스로 황제이고자 하는 에코 세력의 우두머리는 압도적 크기와 완력으로 권력을 행사합니다. 독재자에 가..
2024-04-25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그 안에는 마석도 형사와 동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으로 그들이 잡고자 하는 범인이자 악당들이 들어옵니다. 20층까지 가는데 형사와 범인은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서로가 서로를 알아챕니다. 숨 막히는 긴장이 감돌고 범인들이 19층에서 내립니다...
2024-04-04
영화의 주인공 임상진은 유력 일간지의 기자입니다. 그는 벌어지는 사건들에 대해 당사자이면서 동시에 관찰자, 보고자입니다. 그의 분열된 정체성과 아울러 연속되는 캐릭터의 양상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수년간 수십억의 연구비를 들여 개발한 중소기업의 최신 기술을 대기업이 가로..
2024-03-21
영화는 크게 두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앞부분은 개인사이고, 뒷부분은 민족사에 얽혀 있습니다. 개인사이든 민족사이든 과거의 일입니다. 역사를 잘 알고 연구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그런데 영화가 다루는 역사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발전적이고 미래지향적이지 않다는데 문제가..
2024-03-07
이 작품 <웡카>는 뮤지컬 영화입니다. 노래의 비중이 있지만 그래도 기본 축은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노래와 이야기가 복합된 구성에서 노래는 정서적 집약과 긴장, 이야기는 사건의 전개와 함께 정서적 이완을 담당합니다. 대표적으로 서양의 오페라와 우리나라..
2024-02-15
주인공 할머니들이 커다란 달력 뒤편에 시를 씁니다. 그리움의 정서가 가득합니다. 달력으로 상징되는 시간과 세월을 이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과 상관없이 흐르는 그 물리적 시간 이면에 사람 사이의 깊고 정겨운 이야기와 회한이 새겨집니다. 영화는 바로 팔십 줄에 이..
2024-02-01
'얼씨구나 절씨구야 돈 봐라 돈 봐라 / 잘난 사람도 못난 돈 못난 사람도 잘난 돈 / 맹상군의 수레바퀴처럼 둥글둥글 생긴 돈 / 생살지권을 가진 돈 / 부귀공명이 붙은 돈 / 이놈의 돈아 아나 돈아 / 어디 갔다 이제 오느냐 얼씨구나 돈 봐라.' 판소리 '흥부가'에..
2024-01-11
작년 말부터 상영되는 '노량'이 계속 흥행 중입니다. '명량', '한산'에 이어지는 3부작 최종 작품입니다. 독립된 작품이면서 전편들에 대한 마무리를 기대하게 합니다. 그러나 세 작품은 많이 닮았으면서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넓은 바다에서 벌어지는 큰 싸움에 초인적인..
2023-12-28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대여섯 편의 영화를 꼽아 기억하는 것으로 올 한 해를 돌아볼까 합니다. 폴란드 영화 '당나귀 EO'는 시선 주체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동물의 눈으로 바라보는 인간들의 행태와 세상은 부조리하고 역겨운 것이었습니다. 영화는 그것을..
2023-12-14
이 영화는 느립니다. ‘서서히, 천천히’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그만큼 흥미진진하거나 감정이 확 달아오르거나 하지 않습니다. 영호와 현진 두 사람 모두 나이를 먹고, 사랑하는 이 없이 지낸 지 오래입니다. 첫사랑과도 다르고, 낯선 곳에서 불시에 찾아온 매혹적 사랑도 아닙..
2023-11-30
정승화, 장태완, 정병주, 김오랑.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요? 반대편에 있던 하나회 군인들이 이후 누린 영화와 권력, 호시절이 지나면서 이들 소수의 반혁명(?) 군인들은 그저 비극적 역사의 희생양 정도로 치부되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놀라운..
2023-11-16
미야자키 하야오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입니다. 그의 작품은 일관되게 '돌아가기'를 보여줍니다. 시간상 과거로, 공간상 시골의 자연으로 갑니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은 원형을 찾아,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또한 현대 도시 문명에 대한..
2023-11-02
영화와 이야기는 과거의 재현이라는 점에서 기억과 결부됩니다. 생방송이나 연극과 달리 촬영과 편집을 거친 뒤의 일이므로 관객이 보는 영화의 장면들은 누군가의 기억을 통과한 것이 됩니다. 문제는 기억하는 일이 주관의 개입이나 왜곡, 조작의 가능성에 취약하다는 점에 있습니다..
2023-10-19
시점 쇼트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영화 작품은 가장 작은 구성단위인 쇼트의 배열로 이루어집니다. 쇼트가 모여 장면(scene)을 이루고, 장면은 시퀀스를 만들며, 최종적으로 시퀀스가 연결되어 하나의 작품이 됩니다. 그 쇼트의 배열에서 상황, 사물 혹은 사람을 보여주는 쇼..
2023-10-05
당연하게도 영화란 카메라로 찍은 것을 영사기로 스크린에 비추는 일련의 과정입니다. 모든 일은 카메라 뒤에서 계획됩니다. 카메라 앞의 일들도 촬영 전에 준비된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작 촬영된 것들로 이루어진 영화 작품은 카메라 뒤의 일, 촬영 전의 것들을..
2023-09-21
이 영화는 스타일, 내러티브 등 외견상 사회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심히 들여다보면 현재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적 특성을 고스란히 반영합니다. 결혼도 어려운 일인데 주인공 부부는 아이까지 낳으려 합니다. 재능은 있으나 조연이나 단역만 맡는 연극배우 남편과 임산부이지만 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