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장손' 포스터. |
걷기는 같이 걷지만 그들이 바라보는 길은 다릅니다. 할아버지는 손자가 자신이 세운 두부 공장을 물려받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고향과 그곳에서 자신이 일구고 가꾼 집안과 가풍을 이어가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손자는 영화 내내 택시를 타고 마을을 떠납니다. 기차에 올라 서울로 갑니다.
이 작품은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집니다. 전반부의 제삿날 에피소드와 후반부 할머니의 장례식 에피소드입니다. 관혼상제의 중요한 두 부분인 상례와 제례가 아니었던들 주인공인 손자는 고향 마을을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에겐 서울이 생활과 일의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장손인 주인공에 대한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기대와 소망이 확고하다는 데 있습니다. 경상도 시골의 보수적이고 완고한 남아선호 풍습이 대단합니다.
영화는 내내 아슬아슬합니다.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인 양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오래 묵은 감정의 골을 피해 가려 합니다. 지금은 많이 줄었을 테지만 한 세대 전만 해도 한국 사회의 많은 집안이 이런 문제로 골치가 아팠습니다. 그러니 어느 면에서 주인공 집안은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라 할 만큼 전형적인 양상을 보여줍니다. 영화는 사회비판적 주제로 흘러가는 듯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고향 집에서 하룻밤을 자며 손자는 할아버지의 꿈결 같은 넋두리를 듣게 됩니다. 옆에 누운 손자를 아들로 착각한 겁니다. 한국전쟁 당시 부모님을 인민군의 손에 잃고 간신히 혼자 살아남아 집안을 일으켜 세우며 평생을 레드 콤플렉스에 절어 살 수밖에 없었던 사연은 그저 보수 색채의 경상도 노인의 전형으로 여겼던 할아버지를 개성적 캐릭터로 재인식하게 만듭니다.
고색창연한 집안 내력과 어른들의 골 깊은 갈등이 싫어 고향을 등지려는 주인공의 모호한 태도야말로 이 영화의 가장 문제적 요소입니다. 장손으로서의 특혜를 내처 버리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마지막에 이르러 길을 잃습니다. 가고자 하는 곳이 어딘지 알 길 없습니다. 감독의 페르소나라 할 만한 주인공이 할아버지가 몰래 건넨 통장을 받아들이는 것을 영화가 비판적으로 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남습니다.
김대중 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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