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생의 시네레터] 세대 간의 갈등과 모순

  • 오피니언
  • 김선생의 시네레터

[김선생의 시네레터] 세대 간의 갈등과 모순

장손

  • 승인 2024-11-14 16:56
  • 신문게재 2024-11-15 9면
  • 김지윤 기자김지윤 기자
KakaoTalk_20241113_151200719
영화 '장손' 포스터.
넓은 들 한복판에 오래된 나무가 커다랗고, 멀리서 오래 바라보는 카메라 프레임 안으로 그 들판 길을 늙은 할아버지와 다 성장한 손자가 걸어갑니다.

걷기는 같이 걷지만 그들이 바라보는 길은 다릅니다. 할아버지는 손자가 자신이 세운 두부 공장을 물려받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고향과 그곳에서 자신이 일구고 가꾼 집안과 가풍을 이어가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손자는 영화 내내 택시를 타고 마을을 떠납니다. 기차에 올라 서울로 갑니다.

이 작품은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집니다. 전반부의 제삿날 에피소드와 후반부 할머니의 장례식 에피소드입니다. 관혼상제의 중요한 두 부분인 상례와 제례가 아니었던들 주인공인 손자는 고향 마을을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에겐 서울이 생활과 일의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장손인 주인공에 대한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기대와 소망이 확고하다는 데 있습니다. 경상도 시골의 보수적이고 완고한 남아선호 풍습이 대단합니다.

영화는 내내 아슬아슬합니다.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인 양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오래 묵은 감정의 골을 피해 가려 합니다. 지금은 많이 줄었을 테지만 한 세대 전만 해도 한국 사회의 많은 집안이 이런 문제로 골치가 아팠습니다. 그러니 어느 면에서 주인공 집안은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라 할 만큼 전형적인 양상을 보여줍니다. 영화는 사회비판적 주제로 흘러가는 듯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고향 집에서 하룻밤을 자며 손자는 할아버지의 꿈결 같은 넋두리를 듣게 됩니다. 옆에 누운 손자를 아들로 착각한 겁니다. 한국전쟁 당시 부모님을 인민군의 손에 잃고 간신히 혼자 살아남아 집안을 일으켜 세우며 평생을 레드 콤플렉스에 절어 살 수밖에 없었던 사연은 그저 보수 색채의 경상도 노인의 전형으로 여겼던 할아버지를 개성적 캐릭터로 재인식하게 만듭니다.

고색창연한 집안 내력과 어른들의 골 깊은 갈등이 싫어 고향을 등지려는 주인공의 모호한 태도야말로 이 영화의 가장 문제적 요소입니다. 장손으로서의 특혜를 내처 버리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마지막에 이르러 길을 잃습니다. 가고자 하는 곳이 어딘지 알 길 없습니다. 감독의 페르소나라 할 만한 주인공이 할아버지가 몰래 건넨 통장을 받아들이는 것을 영화가 비판적으로 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남습니다.

김대중 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유등교 침하 4개월… 임시교량 지연에 도마큰시장 상인과 교통경찰 '시름'
  2. [사설] 'N수생' 몰린 수능, 무탈하게 치러지길
  3. [사설] 아산시 등 '대도시 기준' 전향적으로 낮춰야
  4. 교권침해 판정에 사과 대신 행정소송… 대전교사노조 "경각심 일깨울 판정 촉구"
  5. [기획] 충청권 유니버시아드 아이콘될까… 충남과 보령 그리고 비치발리볼
  1. 2025학년도 수능 D-1, 유의사항 읽는 수험생들
  2. 소방안전교부세 특례 일몰에…충청권서도 반대 목소리
  3. 대전서부교육지원청 수석교사-신규교사 1대 1 수업나눔장학
  4. 우승한 한밭대 교수, 실전 창업경험 담은 '생존창업 1%' 출간
  5. 태양 코로나그래프 국제우주정거장에 무사히 설치… 2025년 1월 본격 관측

헤드라인 뉴스


수능 끝, 본격 `대입 레이스`…가채점 바탕 정시전략 수립을

수능 끝, 본격 '대입 레이스'…가채점 바탕 정시전략 수립을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끝나고 본격적인 '대입 레이스'가 시작된다. 수시모집 대학별 고사와 함께 12월 31일부터는 정시모집 원서접수에 돌입한다. 수험생들은 12월 6일 수능성적 발표 전까지 가채점 결과를 바탕으로 정시 지원전략을 수립하게 된다. 입시 전문가들은 가채점 기준으로 정시 지원 가능성을 분석하고, 수능성적 발표 후에는 최종 지원 대학과 학과를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시모집에서는 수능성적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대학별 수능 영역별 반영방법이 다양하기 때문에 이를 철저히 분석해 지원전략을..

`역대 최대 N수생` 2025학년도 수능 작년보다 쉬웠다… 변별력 확보 관건
'역대 최대 N수생' 2025학년도 수능 작년보다 쉬웠다… 변별력 확보 관건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이 14일 전국 85개 시험지구 1282개 시험장에서 일제히 치러졌다. 의과대학 정원 확대로 N수생이 역대 가장 많이 응시한 이번 수능은 전반적으로 전년도 수능보다 체감 난이도가 낮아지면서 변별력 확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2025학년도 수능은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토대로 출제했다는 게 출제본부의 설명이다. EBS 연계율을 평균 50% 수준으로 하고 2023년 6월 교육부의 사교육 경감 대책에 따라 이른바 '킬러문항'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출제됐다. 최중철..

무인카페 비밀번호 알아내 500만원어치 무단취식한 고등학생들
무인카페 비밀번호 알아내 500만원어치 무단취식한 고등학생들

대전 한 무인카페에서 10대 무리가 돈을 내지 않고 음료를 수차례 뽑아 마신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 점주는 이 학생들로 인해 500여 만 원의 손해를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전중부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1일 한 무인카페 점주로부터 '돈을 내지 않고 음료를 뽑아 먹은 학생들이 있다'는 신고를 받았다. 해당 점포의 키오스크(무인 단말기)에는 관리자 비밀번호를 입력하면 무료로 음료를 먹을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점주는 비밀번호를 통해 마신 음료의 금액이 과도하게 많다는 사실을 파악한 후 CCTV 영상을 확인한 결과, 인근 고등..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우리 딸 파이팅’ ‘우리 딸 파이팅’

  • 수능 끝…‘고생했어 우리 딸’ 수능 끝…‘고생했어 우리 딸’

  • 수능 기다리는 수험생들…‘긴장되는 순간’ 수능 기다리는 수험생들…‘긴장되는 순간’

  • 2025학년도 수능 D-1, 유의사항 읽는 수험생들 2025학년도 수능 D-1, 유의사항 읽는 수험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