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오브 인터레스트. |
600만의 유태인과 또한 수백만의 유럽인들이 희생된 제2차 세계대전의 한복판에서 펼쳐지는 독일군 간부 가족의 소소한 꿈과 안락함은 참으로 낯선 일입니다. 유리 온실과 각종 식물이 자라는 정원, 아이들을 위한 물놀이 시설까지. 타인의 불행과 비극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그저 생계와 안락을 위한 직업적 일이라는 것이 몸서리쳐지게 다가옵니다. 심지어 이제 막 행복의 터전에 발을 디뎠다고 생각될 때 타지로 발령난 것이 그들 가족의 갈등 요인이 되고, 뇌물을 써서 원직으로 복귀하는 모습은 극도로 폐쇄적인 그들만의 세상을 보게 합니다.
그러나 빈틈없이 봉합된 것처럼 보이는 그들만의 세상에도 예기치 않은 균열이 존재합니다. 엑스선을 투과한 것처럼 처리된 야간 장면에서 딸은 집을 빠져나와 비극적 현장을 헤매며 잔해를 수습하는 몽유병자로 그려집니다. 또한 같은 시간 그토록 단란해 보이던 부부가 실상 진심을 공유한 관계가 아니라 허술하기 짝이 없는 욕망의 동거인에 불과하다는 것이 유태인 하녀를 두고 벌인 일을 통해 발견됩니다.
거대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평범한 욕망의 부조리와 더불어 이 영화는 이른바 악의 평범성을 통해 희생당한 이들의 비극이 얼마나 처참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합니다.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이 생각납니다. 평범한 이들에 의해 자행된 무도한 악행은 누구든 타인의 불행을 바탕으로 폐쇄적 행복을 추구할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됩니다. 길고 어두운 복도와 계단을 내려오는 루돌프의 시선 끝에 오늘날의 아우슈비츠 박물관으로 이어지는 장면은 역사에 대한 기억과 더불어 욕망의 실체에 대해 성찰하게 합니다.
김대중 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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