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으로 17년의 시간이 경과되었고, 관련된 인물들의 기억은 자연히 소실되었거나 흐려졌습니다. 그러나 중요하게는 의도적으로 왜곡, 은폐하려는 자들과 망각하기를 거부하고 흐릿해진 기억마저 되살리려는 이들의 대립과 갈등이 있습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완전히 오류인 기억을 강제로 주입 당한 채 죄를 짊어지고 수감자로, 전과자로 살게 된 소년들의 경우입니다.
영화는 기억을 위한 용기를 그려냅니다. 기억할수록 상처가 도드라지고, 거대한 힘에 의한 위협이 가해집니다. 그럼에도 이를 무릅쓰는 용기는 처절하고 쓸쓸합니다. 역으로 영화 곳곳에서 상관을 향해 붙이는 경례 구호는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충성인가를 묻게 합니다. 그들 뒤에서, 안에서 작동하는 욕망의 정체에 대해 회의하게 합니다. 그들이 위한다는 국가는 무엇이고, 조직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들의 폭력은 정당한 것인가.
설경구라는 배우를 다시 만납니다. 10월 어느 날 '소년들'의 개봉예정작 포스터를 보았습니다. '박하사탕'(1999), '오아시스'(2002) 이후 아주 오랜만에 포스터 속 그에게서 아우라가 느껴졌습니다. 그는 힘을 잃었을 때, 상처받았을 때, 고통스럽게 서 있을 때 역으로 가장 위력적이고, 마음을 뒤흔드는 배우라는 생각을 합니다. 오랜 세월을 통과하며 세파와 시류에 휩쓸리며 어쩔 수 없이 원래 먹었던 마음을 잃고 허덕이다가 문득 다시 걸어온 길을 돌아보는 쓸쓸하고 슬픈 눈동자의 사나이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정도의 세월과 또 그만큼의 무게, 그리고 정서적 깊이와 흔들림을 담아내고 표현할 수 있는 배우는 설경구 외에 달리 떠오르지 않습니다. 힘을 빼고 담담히, 때로는 곡진하게 그의 눈빛이 우리로 하여금 진실을 향하게 합니다.
'남부군'(1990), '하얀 전쟁'(1992), '부러진 화살'(2012) 등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에 천착해 온 정지영 감독의 공력을 보게 하는 작품입니다. 좋은 영화로 기억될 것입니다.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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