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카메라 뒤의 일, 촬영이 시작되기 전에 벌어진 것들을 보여줍니다. 그러니 영화에 대한 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작자와 매니저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할리우드 영화 '바빌론'과는 관점이 다릅니다. 1960년대와 70년대 활동한 천재적인 감독 김기영을 모티프로 합니다. 종합 예술이자 집단 창작물인 영화는 보는 관점에 따라 산업, 오락, 문화, 기술, 예술 등 다양한 접근이 가능합니다. 이 작품은 영화를 감독의 예술로 보려는 방향에서 진행됩니다. 영화 '거미집'을 제작하는 과정을 그리는 이 작품 속에도 제작자, 배우, 스태프, 검열관 등 감독 말고도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이들은 저마다 다른 입장과 욕망, 이해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이들을 다 아울러서 한 편의 작품이 되도록 진두지휘하는 사람이 감독이고, 그에게도 이루고자 하는 목표와 열망이 있습니다.
문학, 연극, 미술, 음악 등 연원과 역사가 지극히 오랜 예술 분야들과 달리 영화는 불과 100년 남짓밖에 되지 않는 근대적 장르입니다. 많은 예산이 들기에 투자를 받고, 그러니 흥행을 통한 수익 창출이 필요합니다. 감독이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제한된 시간, 예산, 배우들의 출연 조건에 맞출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 안에서 무언가 성취하고자 하는 간절한 예술 의지가 작동합니다. 2차 대전 후 일군의 프랑스 영화 비평가들이 미국의 할리우드 영화들에서 감독들의 이런 특징을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를 '작가주의(auteurism)'라 불렀습니다. 존 포드, 하워드 혹스 등의 감독이 그들입니다.
김기영은 6, 70년대 한국 영화 시스템 속에서 아주 드물게 작가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할 만한 감독입니다. 이른바 너무 일찍 도착한 천재입니다. '하녀'(1960), '화녀'(1971), '충녀'(1972) 등 지금도 리메이크되거나 문제작으로 거론될 만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신상옥 감독의 거대 스튜디오 신필름, 문화공보부 검열 담당자 등 한국 영화사의 중요한 내용들도 흥미롭습니다.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