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일럿' 포스터. |
잘 나가는 파일럿이 아니라 따뜻한 가족을 필요로 했던 아내에게 그는 답답한 남편이었습니다. 예쁘다는 미적 평가의 표현을 업무 관계에 있는 여성 동료에게 칭찬이라는 이름으로 하다가 성적 언동으로 비판받아 직장에서 해고당합니다. 그는 무엇이 잘못인지 알지 못합니다.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아웃당한 그는 결혼 전 살던 본가로 들어갑니다. 그러니 그는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간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결혼 전, 취직 전의 상태로 말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직장을 잡아 여성의 모습으로 살게 된 사내는 하나하나 알아갑니다. 이런 점에서 이 작품은 어쩌면 성장 영화라 할 만합니다. 전에는 그저 옆에 있는 보조 장치나 배경으로만 여겼을지 모르는 여성들과 대화하고, 생활하고, 부딪치면서 그는 여자에 대해 제대로 알아갑니다. 동생인 정미, 낳아 길러준 어머니, 헤어진 아내, 직장 동료이자 성적 언동에 대한 고발자인 슬기까지. 여성으로 변장하고 여성 흉내를 내는 일종의 역할 놀이가 실은 여성으로 세상에서 살아가는 일의 모순과 질곡, 고통을 체험하는 기회가 됩니다.
영화는 정우가 끝내 여성이 되지 못하고 다시 사내로 돌아오는 일의 계기를 그의 전문적 능력이 발휘되는 순간이 되도록 합니다. 미처 몰랐던 인간으로서의 여성에 대한 깨달음과 성찰의 과정의 연장선상에서 조작된 여성 영웅이자 항공사의 간판 이미지로 자신이 변질되는 것을 그는 수용하지 못합니다. 그런 점에서 영화의 첫 장면과 끝 부분의 달리기는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여장 남성이되 깨달을 바를 깨닫고 성찰할 것을 성찰한 것에서 그는 멈춰서려 합니다. 의지와 상관없는 이미지의 조작을 거부합니다.
아쉬운 것은 무거운 주제를 코미디 장르 안에 녹여내려는 과정에서 한정우라는 캐릭터보다 배우 조정석의 모습이 더 두드러진다는 점입니다. 짐 캐리가 열연한 <트루먼 쇼>(1998)만 못합니다. 공감과 이해는 있을지언정 깊은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는 데까지는 실패입니다.
김대중 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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