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열린 시간 속에 흘러가는 반면 영화는 두 시간 여 닫힌 시간 안에 존재합니다. 40여 년 세월이 지난 뒤 실제 사건과 그 결과로 이어진 상황 속에 이들 영웅은 잊혀졌습니다. 그런데 영화 안에서 이들은 군사 반란에 맞서 군인으로서의 신념을 끝까지 지켜내는 주인공으로 그려집니다. 이를 위해 두 시간의 러닝타임 안에서 이들 신념에 찬 군인들의 개인사와 고뇌, 저항적 행동은 반란 세력들과 대결을 이룰 만큼 크게 다뤄집니다. 또한 이렇게 함으로써 소위 성공한 쿠데타의 주동 세력은 반영웅 혹은 빌런의 캐릭터로 형상화됩니다.
참모총장 정상호(이성민 분)가 극구 사양하는 이태신(정우성 분)을 수도경비사령관으로 임명하려 설득하는 벤치 장면이 떠오릅니다. 카메라는 비교적 멀리 서서 이들에게 넓은 공간을 제공합니다. 물론 실내 장면도 여럿 있지만 이후 영화는 줄곧 이태신을 실외의 공간에 세웁니다. 그 넓은 공간감은 그의 신념과 행동을 대범하게 부각합니다. 반면 반란 세력들은 내내 실내에 머무릅니다. 좁은 전두광 집 거실에 수십명이 모여 있는 장면 등이 대표적입니다. 그것도 풀샷보다는 웨이스트샷, 바스트샷, 클로즈업 등으로 좁게 잡음으로써 그들을 욕망과 집착에 갇혀 있는 존재로 그려냅니다. 사건이 마무리되고 한쪽에서는 양주를 나눠마시며 자축하는 반란 세력을, 또 한쪽에서는 붙잡혀 고문당하는 이태신을 보여주는 가운데 전두광이 어두컴컴한 화장실에서 소변보는 장면은 그가 그 어떤 대의도 명분도 없이 그저 욕망에 따라 지저분하게 움직인 인물이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영화는 지극히 사적인 욕망에 갇힌 군사 반란 세력과 올곧은 신념을 위해 끝까지 저항한 소수의 군인들을 대립시킴으로써 기억과 캐릭터의 전복을 꾀합니다. 이를 통해 12·12 군사 반란과 제5공화국이 한국 사회의 발전과 성숙을 위해 거쳐야 했던 필요악의 역사가 아니라 권력자의 비호 속에 세력을 형성하고 권세를 누리던 이들이 권력 그 자체를 쟁취하려 한 욕망의 소산임을 깨닫게 합니다.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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