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노인의 늙고 병든 몸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그런데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 작품의 주된 서사처럼 보이는 세대 간의 갈등보다 더 본질적이고 강렬한 것은 노년의 몸과 마음의 모순적 상황에서 비롯됩니다. 하지만 이 모순은 쉽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자식들은 아직 젊고 그들의 삶이 중요하여 부모의 아픔을 헤아리고 품을 여유가 없습니다. 하여 영화는 주인공들을 고향으로 이끕니다. 거기 옛 추억의 시간과 장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친구가 있습니다.
달력 뒷면의 시도 바로 고향에 돌아와서의 일입니다. 도시에서 병에 부대끼고, 자식들과 갈등할 때 주인공들은 현실 속 차가운 언어를 구사합니다. 고향에 돌아와 비록 몸은 여전히 고통스럽고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해도 따뜻하고 정겨운 꿈과 그리움이 시어로 씌어집니다.
그들의 고향은 땅이 끝나 바다로 이어지는 곳입니다. 머지않아 삶을 끝내고 이승을 떠나야 하는 그들의 처지와 딱 맞아떨어집니다. 마지막 장면 그들은 소풍 길을 나섭니다. 영화가 끝내 보여주지 않지만, 그들의 소풍은 천상병의 시 '귀천' 한 대목처럼 하늘로 돌아가는 길이 됩니다. 그 마지막 언덕 바람이 세차고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2악장이 화면 위로 흐릅니다. '황제'라는 제목처럼 1악장, 3악장은 힘차고 웅장한데 2악장의 선율은 더없이 부드럽고 정한이 넘쳐납니다. 평범한 일생이지만 다른 이의 손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삶의 마지막을 선택하려는 그들의 존엄을 기리고 위무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나문희, 김영옥, 박근형 배우의 연기는 어디까지가 연기이고 실제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만큼 아름답고 절실하며 진심이 가득합니다. 게다가 평생을 배우로 산 이들의 관록과 앙상블이 높은 경지를 보게 합니다. 삶의 궁극에 이르러 도달하는 죽음 앞에서 우리는 역설적으로 생의 진 면목을 목도 합니다. 깊은 이해와 공감으로 세월의 상흔을 어루만지는 노년의 우정은 모든 세대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오래도록 기억될 좋은 영화입니다.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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