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문제는 없이 사는 이들의 돈이 탈취된 상황에 공공 기관인 경찰이 너무도 무심하다는 데 있습니다. 100억대 금융 사건을 수사하기에 바쁜 경찰에게 덕희의 돈 삼천 이백만원은 거들떠볼 것이 못 됩니다. "아줌마 때문에 피곤해 죽겠어. 우리 바쁜 거 안 보여요? 사건 종결됐는데 왜 자꾸 귀찮게 해?" 이럴 때 국가는 베네딕트 앤더슨이 말한 '상상의 공동체'일 뿐입니다. 이익이 안 되는 일과 사람을 가차 없이 내치는 천박한 신자유주의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 줍니다.
이제 덕희의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야 할 일입니다. 다행인 것은 그에게 함께 할 동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이스피싱과 관련해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인 재민이 있습니다. 이들 약자 혹은 피해자의 연대가 영화의 진정한 주제일 수 있습니다. 살아남아야 하는 이들의 절박함이 불법적 탐욕의 보이스피싱 조직과 무늬만 공공 기관일 뿐 이익 집단에 가까운 국가 기관의 무심함을 이깁니다. 마침내 얻어낸 덕희의 승리가 영광이나 기쁨이 아니라 현실의 각성에서 비롯된 분노와 아픔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데 이 영화의 힘이 있습니다.
가까스로 탈출했지만 쓰러진 재민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덕희가 생각납니다. 슬픔은 슬픔끼리 상처는 상처끼리 서로를 보듬는 동병상련입니다. 직전까지 급박하고 강렬하게 펼쳐지던 액션의 흥분과 곧 이어질 범인 체포의 쾌감 사이에서 정적에 가까운 이 장면은 공감과 위안의 깊은 정서적 이완을 만들어냅니다. 아울러 이 작품은 피해자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에서 <범죄도시> 시리즈, <베테랑>(2015) 등 기존의 범죄물들과 다른 결을 보여줍니다.
-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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