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서커스에서 부리는 당나귀가 동물보호 단체 사람들에 의해 구출(?)된 뒤 여러 곳을 떠돌아다니는 이야기입니다. 자신을 돌보고 지극히 사랑하며 교감하던 서커스 소녀와 헤어진 당나귀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언어적 의사 표현을 하지 못하는 대상에 대해 더욱 섬세한 배려와 돌봄이 있어야 함에도 동물보호 단체 사람들은 정치적 성과를 홍보하고 축하하는 일에만 열중합니다. 이후의 모든 상황이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축구 경기장에서, 말 사육장에서, 동물 도축장에서, 트럭에서, 휴게소에서, 고속도로에서 당나귀 EO는 인간들의 편의와 목적, 이해관계에 따라 우상이 되었다가 혐오의 대상이 되거나, 관심을 끌다가 무관심 속에 방치됩니다. 무분별한 폭력에 노출되기도 합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주체이면서 동시에 관찰의 객체가 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저지르는 일의 의미와 문제점을 알지 못합니다. 무감각하고 무지한 그들이 당나귀 EO의 시점으로 목도되고 관찰됩니다. 영화적으로는 EO의 시점 쇼트인 인간들의 행위가 냉정하고 날카롭게 고발되는 효과를 냅니다. 일종의 로드무비라 할 수 있는 이 영화에서 당나귀 EO는 대상이면서 또한 주체이고, 피해자이면서 아울러 관찰자이자 고발자입니다. 인간들에 의해 수동적으로 이루어지는 EO의 여정은 그러나 동시에 능동적 주체인 인간들의 모순과 부조리를 폭로하는 과정이 됩니다. 대단히 독특하고 신선합니다.
폴란드 영화의 거장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Jerzy Skolimowski, 1938 ~)가 감독한 이 작품은 작년도 제75회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습니다. 1965년 데뷔한 그는 <피아니스트>(2002) 등의 로만 폴란스키 감독과 더불어 폴란드 뉴웨이브 영화를 이끌었습니다. 80대 노장의 감각과 표현이 놀랍습니다.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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