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글쓰기와 책 만들기를 모티프로 합니다. 둘은 깊이 관련되지만 실은 아주 다릅니다. 글은 혼자서 쓰고, 책은 함께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글 쓰는 남자는 혼자가 익숙합니다. 책 만드는 여자는 늘 사랑을 기대합니다. 함께 하는 일의 기쁨과 보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영호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실은 현진의 배려와 포용, 기다림에 영호가 반응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글을 쓰며 영호는 자신과 대면합니다. 회상과 기억 장면으로 드러나는 영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그의 혼자 살기가 첫사랑의 상처와 더불어 사랑에 서툰 자신에 대한 방어기제임을 알게 됩니다. 가끔 시청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 속 인물들이 정말 자연이 좋아서라기보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상처받고 은둔한 것임을 생각했습니다. 영호 역시 그렇습니다. 그러니 돌아보는 과거사는 상처의 확인이면서 또한 새로운 사랑의 시작점이기도 합니다.
영호의 글을 읽으며 현진은 그를 천천히 이해하게 됩니다. 물론 그들은 대화도 나누고, 일도 함께합니다. 그때 장면은 비교적 빠르고 흥미롭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쓰기와 읽기에 주안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결말에 이르러 그들은 서로의 생각을 수용합니다. 영호는 책을 내고, 현진은 영호의 문장 '혼자여서 괜찮다'로 카피를 바꿉니다. 혼자일 때와 함께할 때 모두를 긍정합니다.
아버지와 둘이 지내다가 따로 나온 현진이 무슨 일로 옛집을 찾은 장면이 떠오릅니다. 문을 열고 나온 아버지의 동거인과 대화를 나눕니다. 오래 혼자 지내던 두 분이 왜 함께 살기로 했는지 묻습니다. 어색할 수도 있으련만 진솔한 답이 옵니다. 같이 살아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라고요. 사랑과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따뜻하고 좋은 작품입니다.
/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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