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메의 문단속'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흐름을 이끄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로 대표되는 기존 애니메이션이 도시화, 기계화된 문명 이전의 자연과 동심으로의 회귀를 주제로 하는 데 반해 이 작품은 자연 판타지가 더 이상 인간들에게 안식이나 위안을 주거나 정체성의 근원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통렬히 깨우칩니다. 그러므로 성인의 입구에 선 스즈메는 상처 입은 과거 속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고 끌어안음으로써 현재의 삶을 직면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용기를 갖게 됩니다. 생활 풍경의 극사실적 묘사와 쓰나미 등 자연재해의 공포가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다음 소희'는 특성화고 3학년 여학생이 실습생으로 일하는 직장에서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당하다가 저수지에서 생을 마감하는 내용입니다. 춤을 좋아하며 휴대폰으로 자신을 찍은 영상만 남기고 삶의 흔적을 지운 소희가 양말도 신지 않은 슬리퍼 차림으로 겨울 저수지를 향해 걸어가는 장면은 대단히 강렬하고 비극적입니다. 바닥을 힘차게 디디며 에너지를 뿜어내는 춤추는 소희의 생전 이미지가 프레임 저 밑 저수지로 내려간 그녀의 죽음과 대조를 이룹니다.
'바빌론'과 '거미집'은 영화가 무엇인지를 성찰하게 하는 작품들입니다. 초기 할리우드 영화 제작 과정과 현장을 제작자와 매니저를 통해 그려내는 '바빌론'에 비해 '거미집'은 영화를 진두지휘하는 감독의 예술적 열망에 대해 중점을 둡니다. 코로나 사태로 중단되다시피 한 영화 제작과 상영의 상황 속에서 영화의 정체성과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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