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생의 시네레터
2023-09-07
이 영화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대단히 복합적이고 다층적입니다. 영화와 관련해 켜켜이 겹을 이룬 다양한 요인들 중 가장 밖에 있는 것은 바로 현재를 살아가는 한국인 관객인 우리와 우리가 처한 현실입니다. 주된 이야기는 2차 대전과 그 직후 국제 정세와 미국 정부, 그리고..
2023-08-24
영화는 한국에 아파트가 처음 세워질 때부터의 역사를 실제 사진과 영상을 보여주면서 시작합니다. 픽션이 돼 현실로부터 온 것이고, 역사적 기원을 지닌 것임을 적시합니다. 아파트는 도시로 도시로 사람들이 몰려드는 근대화의 상황에서 거주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물리적 장치일뿐..
2023-08-10
바다 밑에 가서 물고기나 조개, 문어, 해삼, 멍게 등을 잡는 여성들이 나옵니다. 목숨을 걸고 일을 하는 그녀들을 해녀라 합니다. 땅 위에 발 디디고 터 잡고 일을 할 수 있다면, 아니면 벌이나 살림이 넉넉하여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 그것도 아니면 든든히 울타리가..
2023-07-20
1996년 처음 시작된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가 7편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압니다. 주인공 헌트가 무슨 일을 하겠구나. 어떻게 하겠구나. 구체적인 내용은 다르지만 정말 어려운 일을 대단한 능력을 발휘해서 마침내 이루어낼 것이라는 걸 말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7편 역..
2023-07-06
맥거핀은 스릴러 영화의 대가 앨프리드 히치콕의 작품에 사용된 장치를 설명하는 용어입니다. 영화 초반 중요하게 제시되어 끝까지 긴장과 갈등을 유지하게 만드는 물건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 물건은 막상 마지막에 이르러 정체가 드러나면 기대했던 것만큼 대단하지 않습니다. 다만..
2023-06-22
이 영화는 대단히 정치적입니다. 계급과 권력, 자본의 문제가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그러나 현실이라기보다 우화에 가깝습니다. 1부, 2부, 3부로 구성된 비교적 긴 내용에서 가장 현실과 유사한 것은 1부의 모델 커플 에피소드입니다. 2부 호화 유람선, 3부 무인도 이야기..
2023-06-13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을 생각합니다. 물론 그녀의 말은 2차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만행이 사이코패스 등 특이한 인물에 의한 것이 아님을 지적한 것입니다. 그러나 확장적으로 이해할 때 작품 초반부 2015년 인천 남항이라고 적시한 장면의 자막은 영화의 주요..
2023-05-25
악당의 무리에 잡힌 너구리 로켓이 우여곡절 끝에 구조되지만, 친구들의 정성에도 불구하고 병상에서 죽어갑니다. 놀랍게도 죽음 직전인 로켓의 정신세계가 영상으로 재현됩니다. 멀리 이미 죽은 옛 친구들이 로켓을 맞으러 옵니다. 시난고난했던 로켓이 친구들의 손에 이끌려 죽음..
2023-05-11
이 영화는 깁니다. 특별하지도 없습니다. 스타가 나오지도 않고, 로맨스이지만 자극적이거나 격정적인 애정 장면도 없습니다.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일상과 틈틈이 발생하는 사랑 이야기가 다입니다. 그런데 163분의 러닝타임이 지루하지 않습니다. 주인공 영실은 고고학자입니다...
2023-04-27
웨스턴은 서부영화를 말합니다. 미국의 서부 개척기 법과 제도가 미치지 않고, 도덕이 있을 리 없는 황야. 마적단, 인디언들과 싸우며 소떼와 가족을 지키던 카우보이들의 전설 같은 이야기를 그린 장르입니다. 이름난 보안관이 멀리서 말을 타고 나타나 악당들을 소탕하고 유유히..
2023-04-13
문이 있습니다. 닫을 수도 열 수도 있는 문은 경계이기도 합니다. 닫아서 밖의 위험이 안으로 들지 못하게 하거나, 열어서 이곳과는 다른 세계의 어떤 것을 만나야 합니다. 열아홉, 아이의 끝이자 어른의 초입에 선 스즈메가 문 앞에 서 있습니다. 살고 있는 곳에서 아주 멀..
2023-03-30
찬 겨울 양말도 신지 않고 삼선슬리퍼 차림으로 저수지를 향해 가는 소희. 소녀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직 성인도 아닌 상태. 학생이지만 노동 현장에서 노동자와 똑같은 수준의 일을 해야 하는 상황. 카메라는 언덕을 바라보고, 저수지는 언덕 너머 아래쪽에 있으므로 소희는 서..
2023-03-16
국회의원 후보 해웅의 화면상 첫 위치는 절반 이하입니다. 유세할 때도, 유권자를 만날 때도 늘 낮은 자리에 있습니다. 그때 그는 순수하기보다 순진하고, 겸손하기보다는 비굴해 보입니다. 후에 모든 우여곡절을 통과하고 마침내 국회의원 배지를 달게 될 때 그는 원래도 큰 키..
2023-03-02
이 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고 인상적으로 다가온 마지막 장면. 한 사내가 아주 오랜만에 LA에 와서 극장에 관객으로 앉아 있습니다. 스크린 위로는 당연하듯이 천연색 유성 영화가 펼쳐집니다. 그리고 그는 지나온 세월을 추억합니다. 그에게 일거리를 주던 스타도, 친구 겸..
2023-02-09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허구입니다. 영화에서 이런 일은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습니다. 대개는 아주 오래전 역사일 때 그러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최근세인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허구적 상상을 발휘합니다...
2023-01-26
영화 속 아바타는 미래의 인간입니다. 죽기도 하고, 상처도 입지만 현재의 사람들보다 훨씬 강합니다. 날짐승을 타고 날 수 있고, 물짐승을 타고 잠수도 합니다. 서구 이야기 전통의 뿌리라 할 그리스 신화는 신들의 세계로부터 인간이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영화 속 아바타와..
2023-01-05
첫 장면. 끝없이 펼쳐진 설원을 한 사내가 걸어옵니다. 카메라는 아주 멀리 있습니다. 원작 뮤지컬의 무대에서는 구현할 수 없는 장면입니다. 영화는 그렇게 영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방식으로 작품을 시작합니다. 끝 장면 역시 그러합니다. 형장의 교수대 앞에서 생을 마감하기..
2022-12-22
또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완결되지 않았지만 관객들이 영화관을 찾는 일이 되살아났습니다. 올 한 해 제 가슴 속에 깊이 남은 영화들을 돌아보려 합니다. 독자 여러분들께서도 나만의 영화 리스트를 뽑아 보시면 어떨까요? 각각의 영화 속에서 인상 깊은 장..
2022-12-08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광인효현숙경영 하고 조선의 역대 임금들을 순서대로 외우던 일이 있습니다. 영화는 반정으로 광해군을 몰아내고 임금이 되었으나 호란으로 극한의 굴욕을 경험한 인조 임금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의 짧은 기록에 상상을 더했습니다. 일찍..
2022-11-24
깊은 바다에 좌초된 잠수함. 산소는 점점 줄고, 태풍으로 구조는 지연되는데 절반은 죽어야 나머지 절반이라도 살 수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영화는 그 극도의 모순과 비정한 사태가 정치적으로 적당히 포장되는 것에 대한 반발을 다룹니다. 벌어진 일에 대한 해석과 의미화의..
2022-11-10
이 영화는 극명하게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2022)를 연상하게 합니다. 패러디이면서 나아가 사태를 더욱 다양하게 변주합니다. 아울러 거울의 이미지와 미국으로 이주한 외국인의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어스'(2019)도 생각하게 합니다. 또한 너구리..
2022-10-27
남편은 왜 그리도 무뚝뚝하고 불친절할까요? 또 아내는 왜 그렇게 아픈데도 남편과 자식들에게 잘할까요? 오래전 그는 꿈을 접었고, 그녀는 사랑을 놓쳤습니다. 못난 남자, 자신감 없는 여자입니다. 그리고 아내의 인생 끝자락이 두 달여 앞으로 예고되었습니다. 그들은 다시 돌..
2022-10-13
유명한 지도 검색 프로그램으로 북한 평안도의 맹산을 쳐다보는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는 그곳에서 태어나 일제 강점기를 거치고, 전쟁을 겪은 뒤 남한, 미국, 프랑스 등지로 옮겨 살았습니다. 수많은 친구가 전쟁 통에 죽었습니다. 살아남은 일에 대한 죄의식과 상처로 평생을..
2022-09-29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진태의 집에 모인 철령과 잭이 감청을 피해 각기 음악을 틀어놓거나 샤워기 물을 켜 두고 상급자에게 보고하는 과정에서 주의사항을 듣는 대목입니다. 한 마디로 진태를 너무 믿지 말라는 겁니다. 철령에게는 한민족이니 어쩌니 해도 어느 순간 미국과 한통속..
2022-09-15
이 영화는 유쾌합니다. 3년여 코로나19 사태로 찌들 대로 찌든 관객들의 심사를 즐거움으로 바꿔 냅니다. 실상 이렇다 할 스타도, 블록버스터급 액션도 없습니다. 게다가 여성들이 그토록 싫어한다는 군대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재미있습니다. 패러디 전략이 제대로 먹혔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