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이른바 신좌파(new left) 혹은 지적 좌파의 논리와 접근 방식을 보여줍니다. 러시아의 소비에트 혁명으로 대표되는 정치적 좌파는 계급 혁명을 위한 투쟁을 목표로 하는 데 비해 1930년대 이후 유럽의 유대인 지식인들이 중심이 된 프랑크푸르트학파 등의 지적 유물론은 물질적 조건 하의 인간 문제에 대해 논리적으로 체계화했습니다. 명쾌하고 상징적이며, 이론적으로 파급력을 지녔지만, 복잡다단하고 변화무쌍한 현실을 과도하게 단순화한 한계를 지닙니다.
1부의 중심인물인 칼과 야야가 2부, 3부까지 출연하면서 계급화된 상황 속에서 어떻게 권력이 이동하고 작용하는지를 경험하는 영화의 내용은 갈수록 현실성을 상실하고 상징적이고 우화적으로 진행됩니다. 인물들은 개성적 주체가 아니라 계급의 전형으로 도식화되어 표현되고, 그들의 행동과 언어 역시 그러합니다. 가장 문제적인 것은 감독이 상황을 전지적 위치에서 관찰하고 조소한다는 점입니다. 코스모스 한 잎에도 우주의 섭리가 담기고, 인간 개개인이 소우주일 수 있음을 간과합니다. 물론 시대나 사회적 상황에서 자유롭지 못한 점이 있다 해도 인간은 거대한 체스판의 말이 아니며 존엄과 의지를 상실한 채 욕망에만 허우적대는 존재는 아니란 점을 놓치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지난해 칸 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인 이 작품은 켄 로치 감독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와 분명히 다릅니다. 물질적 조건 속의 계급 구조를 다루면서도 인간의 존엄을 놓치지 않는 이들 작품이 주는 감동과 슬픔이 없습니다. 블랙 코미디 작품답게 조소와 풍자가 있을 뿐입니다.
많은 이들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과 이 영화의 유사점을 지적합니다. 과도함, 우스꽝스러움, 비웃음 등. 그러나 현실과 유사하지만 현실과 유리된 한계를 분명히 드러냅니다. 인간이 조건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흔들리기도 하고, 비참하게 굴종하기도 하지만 분연히 투쟁하고 저항하며 존엄한 가치를 위해 삶을 버리기도 하는 존재임을 알지 못합니다.
/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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