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김창열은 물방울 그림으로 일관했습니다. 영화는 그의 그림과 삶을 깊이 있게 조명한 다큐멘터리입니다. 카메라는 멀어져 크고 넓게 바라보게도 하지만, 가까이 또 깊이 들여다보게도 합니다. 이 영화는 후자에 해당합니다. 아들이자 감독인 김오안의 시선이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겨 있습니다. 아버지의 얼굴, 뒷모습, 시선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림들. 다 같은 물방울이 아니었습니다. 고통, 정한, 그리움, 미안함, 죄의식 등이 결정체처럼 또렷하거나 아니면 흘러내리거나 뒤틀린 모습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그림 속 물방울들이 화가 김창열의 깊은 사색과 내면의 대화 혹은 고백의 표현임을 보여줍니다.
화가가 있던 곳은 오래도록 프랑스이고, 많은 그림이 그곳에서 그려졌지만 그림에 담긴 정서와 상념, 사색의 뿌리는 한국입니다. 그림을 통해 이제는 세상을 떠난 예술가의 한스런 평생을 봅니다. 가장 가까운 혈육이면서 한편 아버지와는 살아온 시대도, 삶의 경험도 다른 아들이 세심하게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 담아냅니다. 아버지를 통해 아들은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아가고, 그것은 또한 종종 화면에 등장하는 어린 손주들에게 전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한 예술가에 대한 추모와 애정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세대에서 세대로 전달되는 역사와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어쩌면 모자이크 혹은 퀼트와도 같습니다. 아주 많이 프랑스어가 들리고, 사이사이 한국어가 나옵니다. 프랑스인들과 한국인들, 그리고 미국인들. 일상과 예술 창작, 작품들. 역사적 사건을 보여주는 화면들이 얽혀 있습니다. 시각 예술로서의 회화와 그 연장선에서 이해된 영화는 필연 공간적으로 작용하고 표현됩니다. 하지만 또 다른 면에서 영화는 시간을 아우릅니다. 이 작품 역시 그러합니다. 한 방울 한 방울 캔버스에 그려진 화가의 작업 이면에 그가 살았고 통과해 온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격변의 세월 속에 살아남은 예술가가 어떤 과정을 거쳐 현대 미술의 흐름을 흡수하면서 더불어 자신의 내면 속 상흔을 작품으로 승화했는지 알게 합니다. 지도 속 고향처럼 그의 그림 또한 시간을 사유하는 공간이 됩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