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영실은 고고학자입니다. 옛사람의 삶과 존재 방식을 찾아 깊이 묻힌 흔적이나 유물을 찾아내고 탐구하는 사람. 이제 그녀가 호미와 비, 솔, 카메라 등을 사용해 접근하는 대상은 다분히 공간과 사물이지만 그것을 통해 확인하려는 것은 시간과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 영화가 탐구하려는 사랑과 맞물려 있습니다. 사랑이 또한 시간의 결에 새겨진 사람들의 무엇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막 열정도 전망도 시들해진 관계를 정리하려는 영실은 8년 전으로 자신의 시간을 되돌립니다. 천천히 천천히 지표면을 더듬고, 유물에 솔질하듯 그렇게 사랑을 확인합니다. 흙과 유물을 분리하고, 자연의 축적과 인간의 흔적을 구별하듯 사랑과 사랑 아닌 것을 갈라 내고 따로 담습니다.
어느 순간 불현듯 찾아와 경계를 넘고 들어와서는 휘젓고, 자리를 차지하고, 좌지우지하려는 사내에 대해 영실은 관객들을 답답하게 할 만큼 고요하고 단정하게 응시하는 태도를 유지합니다. 사랑이라 부르기 어색할 만큼 차분하고 관조적입니다. 마치 남 일 대하듯 몰입이나 동일시, 열정과 환상 따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소위 가스 라이팅이라 할 만큼 주제넘고 염치없으며 폭력적이기까지 한 사내 인식은 너무나 현실 속 인물 같아서 뺨이라도 후려쳐 주고 싶도록 하는데도 정작 그녀는 이렇다 할 항변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느리게 느리게 그녀는 변합니다. 관계는 마침내 마감되고, 그녀는 당치 않은 일과 인격적이지 않은 사람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합니다. 마지막 장면 외출에서 돌아온 영실이 자신의 공간 안으로 들어가고 화면 가득 단단히 닫힌 뒤 확실히 잠기는 쇠문이 인상적입니다. 그 문을 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영실 자신뿐입니다. 닫는 것도 물론 그녀. 오랜 탐구와 조사의 시간 끝에 그녀가 찾아낸 사랑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기형도의 시 '질투는 나의 힘' 끝 구절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의 상태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이완민 감독의 연출과 옥자연의 연기가 탁월합니다.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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