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외비>는 1992년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가 동시에 치러진 해의 이야기입니다. 30년 군사정권이 끝나고 실질적인 민주정부를 세우는 선거는 주지하다시피 오랜 민주화 투쟁의 성과입니다. 그러나 저명한 학자의 책 제목이기도 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라는 명제처럼 민주 사회의 이상과 그렇지 못한 현실의 괴리는 한국 사회의 우울한 진실입니다. 영화는 이러한 모습을 누아르 영화의 특징을 담아 잘 드러냈습니다.
누아르 영화는 2차 대전 직후 미국의 갱스터 영화에 붙인 프랑스 비평가들의 용어입니다. 검은색을 뜻하는 누아르는 암흑가에서 벌어지는 불법, 탈법, 무법의 행태를 의미합니다. 이는 단지 낮과 밤, 빛과 어둠의 이분법을 넘어 윤리와 도덕을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 국가를 지향하는 미국 사회의 우울하고 비정한 분열상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금주법을 비웃기라도 하듯 횡행하는 밀주업과 이를 주도하는 이탈리아계 마피아들의 세력 다툼과 폭력이 누아르 영화의 주요 소재입니다. 유명한 '대부' 시리즈,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등이 대표적인 누아르 영화입니다.
정치가 악마와의 거래라는 암흑가 실세 권순태(이성민 분)의 말은 언필칭 국민을 위한 정치 운운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실상 정치는 들끓는 욕망의 현실을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그럴듯한 명분으로 봉합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해웅뿐 아니라 그와 손잡고 일하는 사람들, 그를 배신하거나 따돌리려는 사람들 역시 큰 것 한 방을 잡으려는 탐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조진웅, 이성민 등 배우의 연기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합니다. 그러나 부산을 배경으로 하는 폭력물, 그리고 이들 배우가 이미 보여준 캐릭터의 타성이 날 선 주제의식을 가리는 점은 많이 아쉽습니다.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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