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생의 시네레터] 꿈의 이면 혹은 남은 자의 기억법 '바빌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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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생의 시네레터] 꿈의 이면 혹은 남은 자의 기억법 '바빌론'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 승인 2023-03-02 08:32
  • 정바름 기자정바름 기자
바빌론
이 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고 인상적으로 다가온 마지막 장면. 한 사내가 아주 오랜만에 LA에 와서 극장에 관객으로 앉아 있습니다. 스크린 위로는 당연하듯이 천연색 유성 영화가 펼쳐집니다. 그리고 그는 지나온 세월을 추억합니다. 그에게 일거리를 주던 스타도, 친구 겸 연인 겸 배우였던 여인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1920년대 중반 무성 영화로부터 1927년 최초의 유성 영화가 나오고, 이후 컬러 영화에 이르도록 남은 그 사내 매니는 할리우드에서 일했습니다.

이 작품은 영화에 대한 영화입니다. 지금 디지털 영화의 시대에도 변치 않는 것은 어둠 속의 빛줄기가 스크린 위에 영상을 쏟아낸다는 것입니다. 미국 서부의 사막 지대에 영화 제작 회사가 생겨나고, 감독, 배우, 스탭들이 모여듭니다. 성공과 부귀영화를 꿈꾸는 사람들은 흡사 골드러시 때와도 같습니다. 숲도 아니고, 거룩하지도 않은데 이름은 '거룩한 숲'(Hollywood)입니다. 세속적 욕망의 도시 <바빌론>은 어쩌면 할리우드에 대한 직설적 표현일 것입니다.

할리우드는 이른바 꿈의 공장이라 불리며 온갖 종류의 영화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영화 <바빌론>은 꿈이 잠이라는 어둠을 배경으로 생겨나듯이, 또한 현실을 담아내거나 왜곡하거나 이룰 수 없는 욕망을 대신 실현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영화 제작 이면의 어둡고 탐욕스럽고 음란한 파티와 다음 날 오전 갖가지 세트를 지어놓고 영화를 찍는 모습,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사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닙니다. 한 사나이의 그리움과 회한 속 기억을 보여줍니다. 그 주관적 정서의 과잉을 재즈 트럼펫 연주가 중심이 된 음악이 이어지며 드러냅니다. 기술의 발전, 관객 취향의 변화 속에 어쩔 수 없이 은막의 뒤편으로 사라진 스타들과 술, 코카인, 섹스로 뒤엉킨 향락 속에 일확천금을 꿈꾸다 실패한 사람들을 그 사내 매니는 회한의 정서로 추억합니다. 한편 짧은 인생 반대편 예술의 긴 흐름 속에 영화는 천박한 오락을 넘어 그립고 아름답고 위대한 작품으로 남습니다. <바빌론>은 영화의 이 양면적 특성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브래드 피트, 마고 로비, 디에고 칼바 등 배우들의 연기가 출중하고, <라라랜드>, <퍼스트맨>의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연출이 뛰어납니다. 올해의 영화로 꼽을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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