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생의 시네레터] 문, 기억, 사람들 '스즈메의 문단속'

  • 오피니언
  • 김선생의 시네레터

[김선생의 시네레터] 문, 기억, 사람들 '스즈메의 문단속'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 승인 2023-04-13 08:53
  • 정바름 기자정바름 기자
스즈메의 문단속
문이 있습니다. 닫을 수도 열 수도 있는 문은 경계이기도 합니다. 닫아서 밖의 위험이 안으로 들지 못하게 하거나, 열어서 이곳과는 다른 세계의 어떤 것을 만나야 합니다. 열아홉, 아이의 끝이자 어른의 초입에 선 스즈메가 문 앞에 서 있습니다.

살고 있는 곳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도쿄에 이르기까지 문은 줄곧 자연재해를 입은 폐허에 있습니다. 지진, 쓰나미 등 재난이 그 문을 통해 나옵니다. 스즈메와 그녀의 동료 소타는 사력을 다해 그 문을 닫으려 합니다. 폐허가 되기 전 그곳은 학교였거나 놀이동산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숨결과 발소리, 일상생활이 있던 곳입니다. 그러니 문을 닫으려는 그들의 노력은 현재의 재해에 대한 것이기보다 이미 입은 재해의 트라우마에 대한 방어 행동이라 할 만합니다. 도쿄는 다릅니다. 재앙의 문은 바로 도심 한복판에 있습니다. 일상의 사람들과 임박한 재앙이 겹쳐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재앙의 문을 닫는 일이 지진을 막아낼 리 없습니다. 심리적 행동임에도 깊은 울림을 주는 까닭은 사람과 그들의 삶에 대한 애정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스즈메의 고향으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이제껏 문을 닫으려 한 그녀는 고향에서 문을 열고 과거의 기억 속으로 들어갑니다. 거기서 어머니를 잃고 울고 있는 어린 시절의 자신을 만납니다. 그녀는 다시 현실로 돌아갈 것입니다. 치유되지 않은 시간과 기억은 항용 사람을 끈질기게 붙들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타인의 삶과 상처를 보듬고, 재앙의 기억이 주는 공포를 막아내려는 여정에서 스즈메는 자신의 지나온 시간이 크고 넓은 세상사 고통의 일부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한편 성장 서사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문, 다리가 한 개 없어진 의자 등 여러 상징적 장치들과 상상에 기반한 판타지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대단히 사실적인 화면을 그려냅니다. 학교의 얼룩지고 벗겨진 낡은 벽, 운동화의 때 묻은 상표 등등. 완벽에 가까운 현실의 재현은 오히려 이 영화의 환상성을 더욱 부각시켜 줍니다. 일상의 시공간을 덮치는 재앙은 현실을 넘어 환상에 가까운 것입니다. 스즈메와 소타는 초능력자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자신과 이웃들의 상처, 그리고 그것을 향해 엄습해 오는 재앙에 맞서는 용기 있는 영웅입니다. 어린 스즈메를 안고 토닥이는 열아홉 스즈메의 따뜻한 손길이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사설] 지방의원 표적 삼은 '딥페이크 범죄'
  2. [사설] 트럼프 귀환, 지역경제 파장 대비할 때다
  3. 계룡장학재단, 제105회 전국체육대회 대전시 우수입상자 장학금 지급
  4. 월드비전 한국교회 트렌드 2025 '목회전략세미나'
  5. 대덕구노인종합복지관 종사자 성인지감수성 교육
  1. 동구정다운어르신복지관과 대전도시공사 온정담은 연탄나눔
  2. 세종교육청 2025년 현안 과제 산적...예산·정책 안배는
  3. [소방의 날] 후송 거절에 무너지는 마음 "고맙다" 한마디에 다시 한번
  4. [아침을 여는 명언 캘리] 2024년 11월8일 금요일
  5. '트럼프 시즌2 개막' 고환율·관세폭탄 지역 수출기업 빨간불

헤드라인 뉴스


[9일은 소방의 날] 후송거절 많아져 어려움… “고맙다” 한마디에 뿌듯

[9일은 소방의 날] 후송거절 많아져 어려움… “고맙다” 한마디에 뿌듯

"올해 폐섬유증을 앓고 있던 환자의 호흡곤란 신고가 들어왔어요. 산소 수치가 좋지 않아 무조건 병원을 가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대전에 수용 가능한 병원이 없어 결국에는 충북 청주까지 갔어요. 결국 환자분은 돌아가셨는데, 나중에 환자의 따님 분들이 찾아오셔서 그래도 마지막까지 애써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하셨던 게 생각이 나요." 119구급대원으로 10년째 근무 중인 민경훈 소방장(35)은 최근 겪었던 씁쓸했던 일화를 들려주며, 요즘 구급 현장의 어려움을 환자와 보호자들도 느끼고 있다고 걱정했다. 소방의 날을 앞둔 7일 중도일보는 대전서..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6. 대전 중구 대흥동 네일숍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6. 대전 중구 대흥동 네일숍

자영업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년퇴직을 앞두거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는 소상공인의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자영업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메뉴 등을 주제로 해야 성공한다는 법칙이 있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몰두해 질리도록 파악하고 있어야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때문이다. 자영업은 포화상태인 레드오션으로 불린다. 그러나 위치와 입지 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아이템을 선정하면 성공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에 중도일보는 자영업 시작의 첫 단추를 올바르게 끼울 수 있도록 대전의 주요 상권..

충남 숙원 사업 가로림만 해양생태공원 조성 그림 나왔다
충남 숙원 사업 가로림만 해양생태공원 조성 그림 나왔다

충남 '가로림만 국가해양생태공원' 조성을 위한 종합계획이 나왔다. 지난 7월 기획재정부 타당성 재조사(타재)에서 고배를 마신 뒤, 김태흠 충남지사가 중단 없이 더 큰 계획을 마련해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지 4개월 만에 나온 결과물이다. 충남도는 7일 서산 베니키아 호텔에서 전형식 도 정무부지사, 서산시·태안군 관계자, 해양수산부와 전라남도 관계자, 가로림만 어촌계장 등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가해양생태공원 발전 방안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는 해양환경공단의 '가로림만 국가해양생태공원 종합계획' 발표, 발제, 종합토론..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수능 대박’…간절한 기도 ‘수능 대박’…간절한 기도

  • 미국 대선에 쏠린 관심 미국 대선에 쏠린 관심

  • 2024년산 공공비축미곡 매입 시작 2024년산 공공비축미곡 매입 시작

  • 하늘에 뜬 하트…‘가을은 사랑입니다’ 하늘에 뜬 하트…‘가을은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