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유령>은 역사적 공간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상상의 공간으로 이어집니다. 일제에 저항하는 테러리스트들의 모임인 흑색단 단원들을 색출하려는 일본 군경의 작업이 벌어지는 외딴 숲속 끝 해변의 호텔에서 영화는 역사의 외피를 벗고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물로 진입합니다. 부감 숏으로 길게 이어지는 호텔로의 압송 장면은 숙희가 코우즈키의 저택으로 처음 들어가는 <아가씨> 속 장면과 부인할 수 없이 유사합니다. 박찬욱 영화가 보여준 특유의 미술적 공간과 특이한 사랑 이야기가 이 영화에서도 발견됩니다. 역사물이 지니는 영웅적 액션과 권선징악적 쾌감과 구별되는 장르 영화 고유의 흐름과 쾌감을 보여줍니다. 흡사 할리우드 장르물의 대표라 할 서부 영화와도 같습니다. 모뉴멘트 밸리에서 벌어지는 보안관, 총잡이들, 마적단, 인디언들의 액션은 역사적 사실을 넘어 장르물로서의 특징과 즐거움을 드러냅니다.
이 작품의 특기할 만한 점은 단연 여성 캐릭터와 관련됩니다. 일제 강점기뿐 아니라 우리 민족의 역사적 상황에서 여성은 희생의 상징이었습니다. 남성 주체들의 서사 속에서 타자로 존재했습니다. 종군 위안부로 끌려간 어린 여성들이건, 만세 운동 끝에 죽은 유관순 열사이건 그들의 이미지는 슬픈 희생양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 속 두 주인공 박차경과 유리코는 결코 희생양이 아닙니다. 무라야마, 카이토, 총독 등의 남성 캐릭터에 맞서 육체의 힘으로 제압하고 탈출하는 당당한 주체들입니다. 그들은 조국을 위해 싸우면서 동시에 사랑하는 이의 신념을 지켜 주려는 개인이기도 합니다. 독특한 여성 주체 서사입니다. /김대중 영화평론가·영화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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