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또한 그것을 영화로 만든 현재 미국 영화계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관점과 입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는 한국의 관객들이 완전히 객관적일 수는 없습니다. 영화가 다루는 핵 문제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첨예한 상황 속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 자체로도 구조는 다층적입니다. 주인공 오펜하이머에 대한 청문회가 현재 시점이고,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맨해튼 프로젝트 시점이 있으며, 그보다 이전 오펜하이머의 초년 과학자 시절이 가장 안쪽에 있습니다. 영화의 핵심을 이루는 오펜하이머의 생애에 대해 각 층위의 시점에 대립을 이루는 것은 윤리적 관점과 정치적 입장입니다. 선과 악, 그리고 권력의 문제가 개재됩니다. 그러나 영화는 판단하지 않습니다. 어느 인터뷰에서 감독이 밝힌 것처럼 판단이 아니라 이해하기 위해 복잡한 상황을 각 층위의 시간마다 균형 있게 보여주려 합니다.
원자폭탄을 만드는 것은 선인가, 악인가? 양자역학이라는 과학 지식을 기술적으로 이용해 무기로 만드는 것, 그리고 만든 폭탄을 어느 정도로 사용할 것인가, 그렇게 사용했을 때 전쟁과 상관없는 민간인이 희생되는 것, 나아가 전쟁 후 변화된 국제 정세 속에서 미국의 적이 된 소련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는 것 등에 대해 오펜하이머는 계속 고뇌하고, 선택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선택한 것에 대해 방관하기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실천합니다. 이에 따라 찬양과 칭송이 있거나 반대로 역적, 배신자, 심지어 간첩으로 몰리기도 합니다. 그러니 한 인간의 실존 차원의 문제도 제기됩니다.
영화의 가장 안쪽, 시간상 가장 과거에 속한 곳에 오펜하이머의 연애와 결혼 이야기가 들어있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사랑했던 여인의 질병과 그로 인한 갈등, 결별, 그리고 다른 여성과의 결혼은 오펜하이머가 어떤 인물인지를 알게 하는 데 중요합니다. 이른바 객관적 입장에서 그의 선택과 행동은 대단히 모순적이지만 그 자신 매 순간 최선을 다했고, 모두가 그의 삶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사람임을 생각하게 합니다.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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