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황궁 아파트와 관련해 세 남자의 실패를 보게 합니다. 어머니 모시기에 실패했을뿐더러 전세 사기로 남의 가정을 파탄 냈거나, 사기를 당해 처자식을 위한 행복한 집을 마련하지 못한 나머지 살인자가 되고, 남의 이름으로 남의 아들 노릇을 하며 숨어 지냈고, 우연히 얻어걸린 권력에 취해 일그러진 탐욕에 허덕였거나, 이게 다 너랑 우리(처자식, 가족)를 위한 거라고 변명하며 이기적으로 타락해 간 사내. 영탁과 세범, 민성은 결국 다 실패자이고, 영화는 그들로 하여금 비극적 죽음을 맞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들의 실패를 통해 한국적 근대화의 이면을 보게 됩니다. 전통적 농업 사회를 지탱해 온 공동체성과 연대 의식을 잃고, 처자식을 위한다거나 가족의 행복을 위한다는 미명 아래 타자에 대해 폐쇄적이고 배타적으로 경직된 우리들의 비열한 얼굴을 봅니다.
영화는 줄곧 카메라가 높은 곳에 있어 황궁 아파트와 거기 사는 사람들을 내려다봅니다. 이는 수직적 부감숏으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 갇힌 왜소한 인간들을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이르러 그 닫힌 공간이 열리고 다른 장소에 사는 또 다른 사람들을 보여줄 때 화면은 대단히 수평적입니다. 명화가 남편 민성을 잃고 친절한 사람들과 함께 그들의 거처로 들어서자 옆으로 완전히 넘어져 천장이 벽이 되고, 벽이 바닥이 된 집이 보입니다. 이를 통해 영화는 집착과 강박, 차별과 혐오를 벗어난 환대와 우의를 분명히 드러냅니다. 수직적 완고함이 무너지고, 수평적 공존과 연대의 가능성이 엿보입니다.
130분여 긴 시간이지만 엄청난 상황 속에 놓인 인물들의 절박한 처지와 갈등, 긴장감을 통해 영화는 내내 팽팽하고 강한 힘으로 관객을 몰입시킵니다. 그러나 명화와 혜원, 그리고 바깥사람들의 유대와 협력이 세 남자의 서사에 비해 개연성과 추동력이 약한 점은 유감입니다.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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