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알렉상드르 아스트뤽은 카메라를 만년필(camera stylo)로 여겨 영화를 감독의 예술로 생각했는가 하면, 지가 베르토프는 카메라를 눈처럼 여긴 키노-아이 이론을 주창했습니다. 이 영화는 글로 기록된 내용을 카메라를 통해 재현하면서 특별히 목격과 증언 차원의 의미를 강조합니다. 카메라는 사관(史官)의 붓도 되고, 사건의 목격자도 됩니다. 그러니 이 영화는 자체로 역사적 증언이라 할 만합니다. 물론 상상이 가미된 것이기는 하지만요.
여러 면에서 이 영화는 2013년 작 <관상>을 떠오르게 합니다. 왕과 고관대작들, 그리고 그들이 어우러지는 공간인 궁궐의 이야기를 미천한 신분의 허구적 인물을 통해 그려낸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영화적이기는 <관상>이 더합니다. 관상쟁이 내경(송강호 분)의 시점이 곧 카메라의 시선이 되어 인물들과 그들이 벌이는 사건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내의원 의관인 천 봉사(류준열 분)는 직책상 <관상>보다 훨씬 은밀하고 깊숙한 공간까지 들어갑니다. 트랙인(track in)이거나 줌인(zoom in)과도 같습니다. 특히 침술사인 그는 극도로 감추려 들던 시절의 '나랏님'과 그 일족의 몸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보니 그의 눈을 통해 관객인 우리 역시 그들 또한 한갓 욕망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걸 목도합니다.
밤에 더 잘 보는 주맹증 환자 천 봉사는 왕실의 갈등을 증언함으로써 목격자의 책무를 다합니다. 목숨을 건 용기입니다. 영화는 신분과 서열 면에서 비교도 되지 않는 내의원 말단 의관이 낸 균열에 결국 천지를 뒤덮을 만한 권력도 무너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권력은 부자간에도 나눠 갖지 못하는 욕망의 극치임을 드러냅니다.
진실을 보기도 어렵거니와 그것을 말하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진실 반대편에서 커다란 힘으로 억압하는 세력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녘에 날개를 편다는 헤겔의 말처럼 영화는 참된 지혜가 어둠 속에서도 진실을 볼 줄 아는 것임을 역설합니다. 역사적 진실의 각성과 함께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도 경종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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