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공론
2023-04-06
평생 쓸 수 있는 말의 양이 정해져 있는가. 못다 하고 가면 억울해 죽을 양으로 뒤늦게 그녀의 입은 바빠졌다. 굳게 다문 놀부의 곳간 같았던 그녀 입. 들려오는 소문에 일일이 대꾸했다면 지레 지쳐 나가떨어졌을지도 모른다. 참고 또 참아 오늘에 이른 입은 부화가 더딘 병..
2023-04-03
며칠 전 음악가 지인과 점심을 먹고 시내 보문산 숲속에 위치한 클래식 음악 카페 '칸타빌레'에 들렀다. 통나무로 지어진 그곳은 오랜만에 갔건만 옛 풍치 그대로인 것이 우선 좋았다. 낮시간이어서인지 손님도 별로 없어서 쉴 겸 차 한 잔 주문하고 창밖 숲속을 바라보고 있는..
2023-02-26
하늘 높게 날아오르고 싶은 그러나 다가설 수 없는 그리움 눈망울이 차마 시리다 가난하고 슬픈 마음 때문일까 목이 타도록 야왼 살집을 들쑤시며 둥글게 타오르는 꽃잎들 깨끗한 가슴 그 깊숙이 맑고 건강한 핏줄을 심으라 산마루 꼭대기 가늘게 패인 골을 넘치는 물소리는 새 봄..
2023-02-15
아침 산책길 풀 냄새 참 좋다 쌉싸릅한 향기 코 끝 스친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다가와 소소한 기쁨 안겨주는 너 자연 그대로의 의미로 다가와 살포시 고개 내밀어 반겨 주는 너 아침 산책길 풀냄새 참 좋다
2023-01-29
외로움에 목놓아 울었던 지난날 가슴 시리고 먹먹하게 지나온 시간들 이제는 나의 일부가 되어 그냥 그러려니 무뎌진 외로움 나를 들여다보며 내안에 나와 마주 앉아 나를 찾아가는 여행 외로움이 나를 키운다 외로움이 나를 비운다 외로움이 나를 아름답게 물들인다
2022-12-21
영화 '리틀 포레스트(2015)'는 일본의 '이가라시 다이스케(五十嵐大介)'의 만화를 원작으로 '리틀포레스트 여름과 가을 1', '리틀포레스트 겨울과 봄 2', 그리고 두 편을 하나로 묶은 '리틀포레스트 사계절'이 영화화 되었고, 2018년에 김태리를 주인공으로 한 한..
2022-12-18
어떤 맹인이 스승에게 밤늦도록 가르침을 받다가 집을 나서자 스승은 맹인에게 등불을 들려주면서 조심해서 가라고 당부했습니다. 맹인은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맹인에게 등불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스승은 "자네는 보지 못하지만, 다른 사람이..
2022-12-15
소리 없이 향기로 다가온 들뜬 마음이 은하수처럼 빛나고 먼 옛날부터 흐르는 시냇물 너만의 세상에서 호랑나비로 춤을 추니 붉은 정열을 눈동자에 가득 담은 너 드디어 사랑을 속삭이는구나.
2022-12-07
길을 가다가 보았네 찬바람에 떨고 있는 철지나 홀로 핀 장미 친구들은 어디가고 따뜻함의 유혹에 계절도 모른 채 늦가을에 불쑥 나와 꿈도 펼치지 못하고 동장군에 떨고 있나 단풍도 낙엽되어 하나둘 바람결 따라 여행을 떠난 지금 무엇이 보고 싶어 그리워 뒤늦게 찾아 왔을까..
2022-11-30
아늑한 봄날 어려서 소풍가듯, 추억에 잠겨 한없이 걷고 싶었다. 금강제3지류 대전천大田川 목척교木尺矯, 옛 징검다리에서 새우젓장수가 지게 받쳐놓고 쉬듯, '나무로 만든 자' 옆에서 신발끈 동여맸다. 금강제2지류 유등천柳等川 수침교水砧矯, 옛 국민학교시절 버드내 밑을 물..
2022-11-29
*등장인물 조르주 로랑 역-장루이 트랭티냥(성우, 이완호) 안느 로랑 역-에마뉘엘 리바(성우, 이경자) 에바 로랑 역-이자벨 위페르(성우, 송도영) 알렉상드르 역-알렉상드르 타로(성우, 주재규) *영화 시작에 앞서 영화 '아무르(2012)', '아무르'는 프랑스어의 '..
2022-11-20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동병상련(同病相憐)이란 말은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끼리 서로 가엾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같은 병 또는 같은 처지에서 괴로워하는 사람끼리 서로 고통을 헤아리고 동정하는 마음을 말하지요. 청소년 자녀들을 상담할 때, 어떤 아..
2022-11-17
제가 하는 말에 반응 없는 상대가 제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상대가 알아들을 때까지 친절하게 설명하고 또 설명했습니다. 상대가 제 말에 반응이 없던 건 제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상대가 제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임을 알게 된 날, 침묵도..
2022-10-24
오늘은 서울에 간다. 친구들과 친구를 만나러 간다. 인사동에서 식당을 하고 있던 친구가 무허가 건물로 고생을 하다가 코로나 19로 손님이 줄어들자 무허가 기와집을 헐고 건축법에 맞는 새로운 기와집으로 지어 준공을 하고 신장개업을 한다고 해서다. 그동안 무허가 건물로 영..
2022-09-29
천지만물 지으시고 어둠 거두시며 빛으로 오신 주님 거룩하심 찬양하며 영광이 넘치도록 하늘 가득하길 원합니다 이 땅 위에 길을 내시고 빛을 비추시며 대지를 밝히신 주님 거친 땅을 아름답게 하시며 기쁜 소식으로 산과 바다 골목길에도 천사들 발자국소리 끊이지 않게 은혜 베푸..
2022-09-25
색소폰은 불기가 힘이 드는 악기다. 입문하기는 쉬워도 제대로 불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독주를 잘 한다고 합주를 잘 부는 것도 아니고 합주를 잘 분다고 독주를 잘 하는 것도 아니다. 시인과 수필가의 차이쯤 된다. 독주는 감성을 살려 맛깔스럽게 불러야 하지만 합주는 자기..
2022-09-13
사유(思惟)란, 생각하고 판단하고 추론해본다는 말이다. 인간의 가장 고차원적인 심적 능력으로 보편적인 것, 본질의 파악에 관한 이성 작용인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사유의 방>이라는 커다란 전시실이 있다. 이곳에는 삼국시대 국보인 반가사유상 두 점이 나란히 전시되어..
2022-09-06
일주일에 하루지만 배우려고 만나는 만학의 즐거움 노년의 삶이 힘들고 외롭다 하지만 열정 가득 배움의 길 배움으로 돌아가면 아는 것도 가물가물 텅 빈 머릿속 꿈 많던 학창시절 젊은 혈기 어디가고 기억도 흐릿흐릿 수업이 끝나고 믹스 커피 마시며 풀어놓는 인생 보따리 각본..
2022-09-04
바람 '풍(風)'자와 물흐를 '유(流)'자가 합쳐진 풍류라는 말은 단순한 바람과 물흐름이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에 흐르는 멋스럽고 자연스러운 기운으로, 천박하지 않고 운치 있는 일이나 음악을 가리키는 예술 용어다. 그래서 풍류가객(風流歌客)이란, 아름답고 시원스러우며,..
2022-08-30
아버지 우리 아버지 지나는 걸인들을 부르신다 여보시오 이리 오시오 밥은 먹었수 배고프겠구려 국밥 한 그릇 탁배기 한 사발 담배까지 손에 쥐어 주고 손 흔들어 보내신다 어느 날은 딱 한 주먹 남은 저녁 먹을 쌀을 아침을 못 먹었다는 아주머니 손에 선뜻 내어 주셨던 아버지..
2022-08-28
이글거리는 폭염 대지를 삼킬 듯한 여름의 열기 때문에 할 말을 잃었다 모두들 갈라진 땅거죽 야위어진 흉한 몰골 힘들고 지쳐 있을 때 민망스런 햇살 몰려드는 먹구름에 자리를 내어주면 구름은 구원투수인가 더위를 밀어내는 소나기의 연주에 응어리진 멍든 가슴 눈 녹듯 사라지는..
2022-08-25
원래 난 깔끔하고 심플한 디자인에 화이트나 그레이의 모노톤 컬러의 가구를 좋아한다. 썩는 데 500년 이상 걸린다는 이 플라스틱 옷장! 흰색의 기본 뼈대에 서랍 색깔은 연보라색의 촌티 나게 생겨 참~ 맘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아내에게 이 옷장을 버리고 온다 말해도 그..
2022-08-22
새벽 별을 지나온 아침 이슬이 동녘에서 떠오르는 붉은 태양 아래서 호박꽃 꽃술에서 노란 사파이어로 빛나며 말없이 목마른 갈증을 어루만진다. 가지꽃은 계속 아름다운 영혼으로 피어나고 열기에 타고 있는 구멍 뚫린 정오는 부서질 듯 헝클어진 조각난 마음이 된다 어제의 바람이..
2022-08-21
조금 남은 나의 맛있는 잠을 새들이 다 먹었다 메아리로 떠돌던 소리도 저산 너머로 새들이 따라간다 기지개도 놀라 즐길 준비를 하고 이슬은 얼굴이 떨어질까 달랑달랑 두렵다 이 시간이 지나면 볼 수 없잖아 새벽은 아침을 빚어놓고 떠났다 이슬 먹고 나온 장미의 볼에 나는 빨..
2022-08-18
코로나19에 빼앗긴 봄 그래도 봄은 오고야 말았습니다 봄이 오면 설레이는 가슴을 안고 불러보던 노래가 있었습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그러나 올해의 봄은 코로나 19로 인해 입과 코를 막아야만 했습니다. 아무리 예쁜 꽃이 피고 꽃이 져도 그 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