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우리 할머니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하고 싶어서였다.
알록달록한 포장지를 뜯어보시라고 했을 때 할머니께서는 선뜩 포장지를 뜯지 못하셨다.
"뭘 이런 걸 사와 돈 아깝게~ 너나 쓰지~"
나는 할머니에게 '분홍색 앙골라 스웨터'를 입혀 드렸다. 손주들 키우시느라 고생하신 우리 할머니… 좋아하시는 할머니가 귀엽고 사랑스러워 나는 할머니를 꼭 끌어안아 주었고, 행복해하시는 할머니의 이마와 볼에 몇 번이고 뽀뽀를 했었다.
할머니는 교회에 가실 때 그것도 가끔 입으셨는데… 나는 "할머니 아끼지 말고 입으세요~ 이담에 내가 돈 많이 벌어서 더 좋은 걸로 많이 사드릴게요~"라고 말했었다.
'분홍색 앙골라 스웨터'는 털이 좀 심하게 빠졌다. 조금 지나서 알게 되었는데 할머니가 살림을 하시느라 음식에 털이 들어가지 않게 평상시에는 입지를 않으셨다는 것을… 할머니 속도 모르고… 하지만 손주가 사다 준 털 빠지는 '분홍색 앙골라 스웨터'를 입으실 때면 늘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부드럽고 뜨시고 참 좋다"라고….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아버지는 지프차를 타고 산에 가서 적당한 크기의 나무를 베어 오셨다. 할머니와 형 그리고 나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었고 연탄난로가 있는 마루의 소파에서 반짝이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며 잠들기도 했었다.
산타 할아버지는 늘 나와 형에게 양말 두 켤레와 에이스 크래커 하나를 머리 맡에 선물로 놓고 가셨다. 산타를 믿었던 순수하고 어렸던 그때 산타를 만나고 싶어 졸린 잠을 참다가 결국 잠들었던 기억도 난다.
동네 형들은 로봇, 자동차, 비행기 장난감을 주시면서 늘 형과 나한테는 양말 두 켤레와 에이스 크래커만 놓고 가시는 산타 할아버지에게 불만도 있었다.
'할머니 말씀도 잘 듣고 착한 어린이가 될 테니 다음에는 변신로봇을 주세요…'라고 맘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던 기억도 나지만 산타 할아버지는 늘 양말 두 켤레와 에이스 크래커 하나만 놓고 가셨다.
별도의 용돈도 없으셨던 할머니의 크리스마스 특별 선물… '양말 두 켤레와 에이스 크래커'를 떠올릴 때면 마음이 아리고 가슴이 더 저미어 온다.
연세가 들면서 할머니는 교회에 다니시는 것도 힘들어하셨다. 허리와 다리가 아프셔서 걷다가 쉬다가를 반복하셨다. 크리스마스 이브날이면 할머니는 밖에 나가서 친구들과 놀다 오라고 말씀하셨지만 내가 군대에 입대 전까지 크리스마스 이브를 늘 할머니와 함께 보냈다. 할머니가 외로울까 봐….
할머니는 외출복 하나 변변한 것 없이 가지고 계신 옷들은 모두 낡고 오래 전에 사신 옷들뿐이었다.
이병 정기휴가를 마치고 부대 복귀 후 취침시간이면 할머니 생각에 침낭 속에서 며칠간 울었던 기억이 난다. 휴가 때 새벽에 배를 움켜쥐고 아파하셨는데 "괜찮다"라고 말씀하셔서 무심코 지나쳤던 것부터 시작해서 할머니와 더 같이 못 있어준 게 미안하고 후회가 되었다.
내가 부대 복귀하던 날 이층에서 손을 흔들며 나를 배웅해 주시던 할머니… 그때의 인사가 할머니와의 마지막 작별 인사가 되었다…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신 것이다.
염을 하기 전 할머니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할머니는 내가 뽀뽀를 해주면 좋아하셨으니까…. 그리고 나는 할머니의 머리카락을 몇 가닥 뽑았다. 간직하고 싶었다….
살아생전 입으시던 할머니의 낡은 옷들을 태우고 있을 때, 군 입대 전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드린 '분홍색 앙골라 스웨터'를 보았다.
털이 날려 음식에 들어갈까 봐 입지 않으셨고, 손자가 일해서 사다 준 '분홍색 앙골라 스웨터'이기에 단 한 번도 세탁하지 않은 그대로였다.
얼마나 아껴 입으셨길래… 너무 감사하고 미안해서 그리고 너무 불쌍해서 울고 또 울었다….
할머니에게 사드린 처음이자 마지막 선물 '분홍색 앙골라 스웨터'를 태우며….
연두흠/수필가
연두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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