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나는 모임에서 재무 담당으로 당일 회비를 받아 여느 때처럼 핸드백에 넣고 집에 돌아와 봉투를 꺼내 서랍 속에 넣고 곧바로 잠이 들었다. 이삼일 지나서 재무를 정리하려고 서랍을 열었더니 돈 봉투가 없어졌다. 그 서랍 속에는 그 모임에 관한 자료만 넣어둔 곳으로 전 달에 넣어 둔, 빈 봉투이지만 그대로 있는데 하필 그달 받은 돈이 들어있는 봉투만 없는 것이다. 혹시 다른 곳에 넣어 둔 것은 아닌가 해서 골몰히 생각해 보았지만 그곳에 넣은 것이 분명했다. 돈 봉투는 알아보기 쉽게 항공 봉투를 사용했는데 그날은 서랍 속에 물건이 가득해서 꾹 누르고 돈 봉투를 얹어놓았던 것이 어렴풋이 생각나서였다.
나는 시간만 나면 돈이 들어있는 봉투를 찾았지만 허사였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돈 봉투를 넣은 서랍 형태를 생각했다. 다른 방에 있는 서랍은 꽉 차면 바로 밑에 있는 서랍으로 물건이 떨어지던 것과는 달리, 그 서랍은 사방이 막혀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플래시를 켜고 여닫이 서랍을 당기고 그 안쪽 깊숙한 곳을 살펴보니 어둠 속에 흐릿하게 돈이 든 항공 봉투 끄트머리가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 서랍은 물건이 가득 차면 그 서랍 여닫이 바닥에 떨어지게 조립되어있었다. 나는 돈 봉투를 찾자 한숨 놓였다. 하지만 한편 허탈했다. 돈 봉투가 없어진 그 날 바로 그 책상 형태에 대해 생각했다면 쓸데없이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어떤 것에 근원적인 것을 생각할 때 영어의 다섯 개의 'Wh' 물음도 좋을 것 같다. Wh 글자로 시작하는 5개의 의문사는 미국인 회화반을 수강했을 때 영어 교재에 나온 내용으로 Who, Why, What, Where, When, 인데 그 당시 수업시간에는 아주 싫어했던 단어이다. 영어가 서툴지만, 용기를 내어 간신히 한마디라도 말하면, 미국인 영어 강사는 이 다섯 개의 단어에 맞춰 곧바로 되물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이 단어를 잊지 않았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런데 요즘은 목표달성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때 그 단어를 사용한다. *만다라트 기법이라고 가장 큰 주제를 먼저 세워두고 이에 대한 해결점, 아이디어, 생각들을 Who, Why, What, Where, When을 통해 확산해 나가는 형태이다. 인간은 왜 질문하는가, 하는 물음에 관해 권재원은 그의 저서 『세상을 바꾼 질문』에서 '익숙한 것들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때 인간은 질문한다.'고 주장한다.
-경계 안의 세상에 대해 의혹을 갖거나 경계 밖의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집요하 게 탐구하기 위해 '왜(why)'를 묻는 것이 인간이다. 호기심을 품고 새로운 정보를 수집 하고 분류해 보며,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파악하려는 노력에서 새로운 이해와 통찰을 얻게 된다. 고민하는 힘을 통해 삶의 문제를 들여다볼 때 우리는 자신만의 의견을 갖게 된다. '고민'을 통해 인간은 성숙해 나간다.
얼마 전 LA에 갔을 때 국내에 사는 지인의 부탁을 받고 LA에 거주하는 한국인을 만난 적이 있다. 그분은 취업비자로 10년째 LA에서 살고 있는데 타지에서의 생활이 몹시 외롭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넌지시, 한국에 가족도 있고, 가족이 그를 애타게 그리워하고 있는데 왜 돌아가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대뜸 고개를 젓더니 결혼 생활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하면서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다. 가족에게는 경제적으로 충분히 살 만큼 전 재산을 다 주고 왔다고 덧붙였다. 그는 오롯이 자신을 위해 살고 싶어 가족에게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찾아 떠난 것이다. 그런데도 외롭기는 매한가지인 셈이다.
나는 부단히 질문한다. 왜(why), 무엇(what) 때문에 대해 생각한다. 며칠간이었지만 돈이 든 봉투를 잃어버리고 엉뚱한 곳에서 찾았던 것처럼 나는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닌 곳에서 나를 찾고 있는 것이 아닐까 돌이켜 생각해보곤 한다.
*만다라트(Mandal-Art) 발상 기법은 일본의 디자이너 이마이즈미 히로아키가 구상하였는데 Manda(본질의 깨달음)+la(달성·성취)+art(기술)의 합성어로 본질을 깨닫는 기술, 목적을 달성하는 기술을 뜻한다.
민순혜/수필가
민순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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