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왜 중요한 것일까. 흔히 On Time(제때에)을 말하곤 하는데, 과연 인생에 온 타임은 있는 것일까, 생각해보곤 한다. 나는 나이에 대해 특별히 의미를 두기보다는 시각효과(VFX) 계의 '거장'으로 불리는 제프 오쿤의 '피보팅(방향전환)'에 더 관심을 두고 있는 편이다. 오쿤은 "나는 젊었을 때 사진사, 마술사이자 음악가이었지만 다 실패했다. 그러나 시각효과 감독이 되어 이 분야에서 사진, 마법, 음악을 활용하게 된 것"이라며 스스로의 '피보팅' 경험을 밝혔다. 단, "재능을 준비해야 하고, 기회가 교차하는 행운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피보팅'하면, 지인인 사진작가 L이 생각난다. 폭염이 휩쓸던 지난여름, 그는 디지털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땡볕을 누비고 다녔다. 그는 'ㅂ 인터넷 뉴스' 편집국장으로 기사가 있는 곳은 어디든 찾아다녔다. 80세의 나이를 얼마 앞두고여서 더욱더 값진 땀이었기에 하는 말이다. 그는 젊은 시절 '모 연구소'에 근무할 때, 반복되는 일상에 다소 지루한 시간을 작품 사진 촬영을 하면서 극복했다고 한다. 정년퇴직 후에는 아예 사진작가로 활동하던 중 'ㅂ 인터넷 뉴스' 편집국장으로 스카우트되어 그 어느 때보다도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그가 좋아하는 성악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고 양쪽 분야에서 전문성을 나타내는 데는 그만큼 노력해서일 테다. 그러니 그에게서 나이 탓은 전혀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는 항상 '온 타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물건일 경우는 너무 애지중지 하다 보면 온 타임을 놓치는 경우도 있다. 나는 이번에 큰맘 먹고 구석에서 먼지만 모으고 있던 오래된 피아노를 처분하기로 했다. 내가 어릴 때부터 갖고 있던 피아노였기에 차마 내놓을 수 없어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중고 판매상한테 전화했더니 일주일 후에 방문한다고 했다. 나는 피아노 위에 수북이 쌓아놓았던 물건들을 치우며 후회도 되었다. 이렇게 될 것을 진즉에 내놓았어야 했는데, 작은 방에서 공연히 공간만 차지하며 방치했으니 말이다. 좋은 피아노 임에도 오랫동안 그냥 놔두는 것을 아는 지인들이 중고 시세보다 비싼 가격으로 사 가겠다고 해도 거절했는데 이번에 거의 헐값에 내놓은 것이다. 이는 '온 타임'을 지키지 못했음이라.
피아노를 가져가기로 한 날이 되었다. 나는 괜스레 집안을 이리저리 서성이다가 피아노를 열고 검지로 살며시 건반을 눌렀다. 딩~! 아름다운 소리가 울렸다. 연속해서 누르자 아름다운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순간 피아노를 그대로 둘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런데 그때 마침 피아노 판매상한테서 전화가 왔다. 그는 피아노를 가지러 오고 있다고 말하더니 피아노 모델명을 알려달라고 했다. 처음에 알려줬는데도 재차 확인하려는 것 같았다. 나는 모델명을 읽는데 마치 누군가의 임종을 지켜보는 순간처럼 숙연해져서 입에 침이 마르고 말도 나오지 않았다.
간신히 침을 삼키고 모델명을 말하자 전화 저편의 그는 대뜸 말소리를 낮추더니 피아노가 너무 오래된 거라서 중고 가격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처리비를 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기가 막혀서 두 번 말할 것도 없이 다음에 다시 연락하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당장 피아노를 팔지 않는 것은 다행이지만, 그 피아노는 너무 노후 되어 언제든 쓰레기로 처분해야 할 운명이어서다. 뭐든 때가 있는 것 같다. 온 타임(On Time)! 그 적절한 때를 맞추지 못한다면 제아무리 값진 것이었다 해도 무용지물이 되고 마는 것이니 말이다. 나는 한 옆에 놓여있는 폐품 같은 피아노를 매일 바라보면서 우리 삶은 물론이고, 우리 삶에 연결되어있는 그 무엇에도 적절한 때가 있음을 절감하곤 한다.
민순혜/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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