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공론] 영화 '리틀포레스트(Little Forest)'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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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공론] 영화 '리틀포레스트(Little Forest)'를 보고

정미숙 / 영화 평론가

  • 승인 2022-12-21 20:45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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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틀 포레스트(2015)'는 일본의 '이가라시 다이스케(五十嵐大介)'의 만화를 원작으로 '리틀포레스트 여름과 가을 1', '리틀포레스트 겨울과 봄 2', 그리고 두 편을 하나로 묶은 '리틀포레스트 사계절'이 영화화 되었고, 2018년에 김태리를 주인공으로 한 한국판 '리틀 포레스트'의 리메이크 작이 개봉되었다.

일본판과 한국판은 기후와 농작물, 요리법 등, 한.일 각각의 풍토에 잘 맞는 특징을 담고 있다. 내용 면에서도 한국판은 요리와 우정이라는 아기자기한 스토리로 따스한 감성의 느낌이 그려진다면, 일본판은 다큐 형식과도 같은 느낌의 일본 농촌풍경의 전경과 기후, 그리고 사계절의 특색을 반영한 요리들이 눈길을 끈다. 진녹색으로 우거진 수풀림과 습기가 많은 일본여름의 눅눅한 배경, 화면에 펼쳐지는 눈덮힌 겨울의 드넓은 산하 등이 그것이다.

눅눅한 날씨의 마르지 않는 빨래, 나무 주걱에 핀 곰팡이, 자욱한 안개비가 낀 축축한 마을, 습기에 젖는 옷은 일본 여름의 기후를 대변한다. 가끔 밤의 방문객들도 눈에 띤다. 계곡에서 들려오는 짐승들의 울음소리, 매서운 눈매의 지붕위에 올라앉은 부엉이 한 마리, 숲에서 곰이 출몰한다는 어려서 엄마가 들려줬던 이야기는 밤잠을 설치게 한다. 그들 안에서 보여줄 수 있는 각각의 뚜렷한 계절감과 계절에 어울리는 다양한 요리가 선보이는 것이 일본판 '리틀포레스트'의 특징이다. 깊은 산속 오지의 창고 같은 통나무집 분위기는, 한국판에서 보여주는 문명과 근접한 한적한 시골마을의 풍경과는 거리가 멀다

영화 '리틀포레스트'는 한·일판 모두 젊은 사람들이 도시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가 자급자족한 식재료로 자기만의 삶을 꾸려간다는 내용이다. 어린 시절 엄마에게 전수받은 갖가지 요리를 보여주고 거기에 약간의 스토리로 간을 내어 맛을 우려낸다. 때문에 우리와 비슷한 듯하면서도 색다른 음식에 대한 문화와 관습, 더불어 대자연을 만끽하며 사는 여유로운 삶이 힐링영화의 정수로 꼽히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인기의 비결 역시, 도시생활에 찌든 많은 사람들에게 힐링의 공간을 제공함은 물론, 자기만의 삶의 울타리를 만들어가는 주인공들의 인생관과 치열한 도시생활에서의 누적된 피로, 하지만 탈피할 수 없는 각자 주어진 현실에서의 상상의 도피처로 충분하기 때문일 것이다.

'먹방'프로와 '자연인'이란 프로가 한창인 요즘, 젊은 청춘들의 손수 땀과 노력만의 대가로 일궈낸 과일과 채소, 산속의 자연에서 얻어낸 열매 등, 갖가지 먹거리가 엄마와의 추억을 더듬어 마법 같은 다양한 요리로 탈바꿈하는 신기함도 필자가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이다. 또한, 시골마을이란 '작은 숲(Little forest)'에서 자급자족의 생활로 나만의 삶의 숲을 쌓아간다는 느릿하면서도 잔잔한 스토리가 이 영화가 지금까지 주목 받고 있는 이유라 할 것이다.

영화의 배경은 동북부 산간지방의 '코모리'라는 작은 마을이다. '상점 하나 없는 시골이라 사소한 물건을 사려해도 내리막길을 자전거로 30분은 가야 한다. 오는 길은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다. 눈이라도 내려 다른 상점을 가게 된다면 거의 하루 정도는 소비된다. 이 오르막 산길을 '이치코'가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코모리'라는 마을은 분지 밑부분에 위치하고 있어 산의 수증기가 스며들고 땅에 머금은 수증기가 증발하면서 점점 높아지는 습도로 인해 마을은 자욱한 안개 속에 파묻혀 있다.

습도가 높은 공기의 저항감을 뚫고 달린 탓에 집에 도착한 '이치코'의 지친 모습과 흠뻑 젖은 옷이 기나긴 우기임을 말해준다. 안개가 자욱한 밖의 모습은 수증기 속 바다 속으로 헤엄이라도 치고 싶을 정도이다. 습하고 눅눅한 기후 모습으로 일본 여름의 계절감을 잘 표현한 부분이다. 반면, 한국은 맑은 새소리와 함께 산뜻한 숲길이 펼쳐지고 자전거 벨 소리의 상쾌함으로 화면이 열리는 평화로움에서 시작부터가 각기 다른 기후감을 말해준다.

난로에 장작을 패 불을 지피고, 그 열로 빵을 굽는 모습, 키가 작아 산수유 열매가 닿지 않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산수유로 잼을 만드는 모습, 키우던 오리를 논에 풀어 해충과 잡초를 제거하는 오리농법, 장화를 신고 논에 들어가 잡초 바구니를 허리춤에 묶어 등허리로 돌리고 땀을 흘리며 하나하나 잡초를 뽑아내는 모습. 벼를 베어 기둥을 세우고 볏단을 쌓아 올리는 방법 등, 한국 농촌의 농작법과 약간은 생소한 모습이 재미있다.

이렇게 일본판이 계절에 따른 작물법과 요리법으로 주를 이룬다면, 한국판은 서로 귀향한 동창과 시골에 남아있던 친구, 이들의 우정과 동창들과의 어렸을 적 추억을 되살리며 친밀감과 다정한 유대감의 따스한 설정이 특징이다.

처마 밑에 빨간 감이 주렁주렁 걸려있고, 고사리와 삶은 고구마를 저며 말리고, 밀가루를 반죽해 하룻밤 숙성시켜 빵을 만들고, 식혜와 술, 잼, 밤 조림, 꽃 파스타, 수제비, 배추 전, 우스타 소스, 누텔라, 토마토 스파게티소스, 소송채, 이름도 생소한 타차이, 청 바우새 등의 다양한 재료의 요리가 선보인다. 정성들여 요리를 하고 맛을 음미하는 동안의 행복한 시간들, 이러한 장면들은 요리에 관심이 있는 관객에게 훌륭한 레시피가 된다. 공복감이 알려주는 뱃속의 소리가 '위속의 개구리 우는소리'로 표현한 것도 재미있다.

밤새 떨어진 밤 줍기는 동물들과의 경쟁이다. 주워온 밤을 삶아 울궈내어 졸여내는 밤 맛은 일품이다. 필자도 몇 년 전, 도쿄에 사는 지인의 집에 초대받아 밤 맛에 감동했을 때의 추억이 떠올라 더욱 정겨웠다.

그리고 기후에 민감한 토마토와 양파 재배법을 보여주고, 고구마 토란 심는법과 추위에 약한 농작물의 보관방법 등도 보여준다. 또 하나, 옮겨 심지않고 열매가 맺을 때까지 그 자리에 정착시키는 '아주심기'란 말은, 주인공들이 도시를 떠나 시골에 내려와 계절에 순응하며 정착한다는 복선을 깔고 있다. 시골의 여유로운 삶을 지향하는 느림의 미학을 일깨워준 부분이다.

원작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영화에는 30가지가 넘는 요리가 등장한다. 이는 이 영화가 음식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의 숫자이다. 과연 요리의 천국답게 일본인들의 정성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또한 각각의 요리마다 의미를 부여해 연중행사 요리와도 관련이 깊고,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도 등록되어 있을 만큼 요리에 대한 그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이러한 음식에 대한 자부심을 뒷받침 해 주는 것이 이 영화이고 보면, 어느 것 하나 부족함 없는 완벽한 모두가 건강해지는 힐링영화인 셈이다.

아름다운 대자연 속의 편안한 생활, 건강한 음식, 이것 만으로도 이 영화가 던지고자 했던 메시지의 의미는 충분하지 않을까!

정미숙 / 영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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