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공론] 파도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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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공론] 파도타기

정기옥/소설가

  • 승인 2023-05-24 10:12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파도타기를 하러 갔어요. 매서운 바람이 코끝을 아리게 하는 추운 겨울날이었죠.

그날은 비까지 오더군요. 빗방울이 얼굴 위로 춤추듯 떨어졌어요. 그런데 그런 날 파도를 타야 진짜 파도타기 하는 맛이 나거든요. 겨울바다에서 파도타기 하는 맛은 타 본 사람만 알아요. 머리카락을 스치는 차가운 바람에 모공 속까지 시원했어요. 스물다섯 살 되던 해 나는 본격적으로 레포츠를 배웠죠. 첫 도전한 것이 파도타기였어요.

서핑 보드에 올라 파도를 탈 때면 원초적 순수 에너지가 솟구쳐 올랐어요. 나는 보드에 올라 가슴을 바닥으로 누른 다음 뒷발과 앞발 순서대로 보드 중앙에 맞춰 옮겼어요. 그 다음 무릎을 낮춰 중심을 잡으며 보드 위로 일어섰죠. 온 몸의 힘을 최대한 아꼈어요. 파도를 타려면 위치 선정을 잘해야 했죠. 파도가 들어올 때 가장 높은 부분을 피크라고 해요. 힘이 가장 세고 제일 먼저 부서지는 곳이죠. 나는 파도타기 고수가 될 때까지 수 없이 바닷물을 들이켰어요. 드디어 피크를 정복하는 날이 오더군요. 파도가 내게 잡히는 느낌, 바로 그 순간의 희열은 맛 본 사람만 알 수 있죠.

우리 집은 남해 바닷가 근처에 있어요. 걸어서 바닷가까지 100미터 정도였죠. 내가 어렸을 적 엄마는 "물가에 가지 마"하며 내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신신 당부 하셨죠. 나하고 세 살 터울 언니가 있었어요. 언니가 열 살이었을 때 친구 세 명과 집 앞 바닷가에서 물놀이를 하다 너울성 파도에 그만 휩쓸려갔어요.



언니는 영영 돌아오지 못했죠. 언니가 그렇게 가버린 후 엄마는 밤마다 불면증에 시달렸어요. 엄마의 귓가에선 파도소리가 들린다고 했어요. 그 소리 때문에 엄마는 뜬 눈으로 밤을 새웠죠.

엄마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습관처럼 내 얼굴을 매만지며 말했어요.

"지영아. 너는 언니처럼 나쁜 딸이 되면 안 돼. 부모보다 먼저 가는 게 얼마나 큰 불효인지 아니? 우리 지영이 착한 딸 될 거지? 약속해. 물가는 절대 안가겠다고."

엄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죠. 그래서 코앞에 바다가 있는데도 한 번도 바닷물에 들어가지 않았어요.

잠 못 이루는 밤, 엄마는 바닷가로 나갔어요. 밤하늘엔 푸르스름한 초생 달이 떠 있었죠. 엄마는 모래밭에 앉아 초생 달을 올려다보며 말없이 눈물만 흘렸죠. 엄마는 그 달을 언니의 조그마한 몸이 나타난 것이라 생각했나 봐요. 언니의 죽음은 남은 가족에게 족쇄를 채우고 어두운 그늘을 드리웠어요.

나는 서른 살이 되자 그만 그 족쇄를 끊어 버리고 싶었어요. 인생의 바다 스스로 항해하고 싶은 욕구가 가슴 밑바닥부터 치밀어 올라왔죠. 그리고 엄마에게도 항해술을 다시 가르쳐 주고 싶었어요. 그 항해술 잘만 터득하면 높은 파도치는 바다도 가를 수 있었거든요.

저녁노을 붉게 물든 어느 날, 엄마와 바닷가에 나갔어요. 수평선 너머로 노을이 사라지고 있었죠. 엄마와 나는 모래 백사장에 앉아 지나온 날들을 두런두런 이야기 했어요. 어느 새 시간이 흘러 밤하늘엔 보름달도 뜨고 별도 떴어요. 엄마가 좋아하는 보름달이었죠.

"네 언니는 별똥별 참 좋아했는데. 별똥별 보면서 간절히 소원 빌면 이루어진다며 이맘 때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똥별 줍곤 했었지."

엄마가 슬며시 중얼거리더군요. 그때였어요. 초생 달 한가운데 푸른빛의 기운이 진해 지더니 그 옆 유난히 빛나는 별 하나에서 무수한 별똥별이 쏟아지는 거예요. 별똥별이 떠다니는 파도 주변의 일렁임이 엄마의 가슴을 적시는 것 같았어요.

문득 별똥별 떨어지는 밤바다 파도를 가르고 싶었어요. 밤바다는 나에겐 첫 도전이었죠. 서핑보드에 몸을 맡기고 검은 파도를 향해 천천히 나아갔어요. 그 밤 높게 일렁이는 파도가 무서워 심장이 터질 것 같았죠.

나는 파도가 높을수록 한 몸처럼 파도를 느끼며 서핑보드위에 균형을 잡고 일어섰어요. 피크를 정복하며 밤바다 물결을 뛰어 넘었죠.

그때였어요. 나는 내 주변으로 쏟아지는 수많은 별똥별을 봤어요. 그 중 별똥별 하나가 하늘을 가르며 나에게 다가오더니 서핑 보드위에 떨어졌어요.

그것은 언니가 그렇게 좋아하던 작은 별똥별이었어요.

정기옥/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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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옥 작가
★정기옥 작가는?

유튜브 '책먹는즐거움 정기옥 작가' 채널 운영

칼빈대학교 복지상담대학원 인문학 전공(석·박사 통합과정 중)

2018년 계간지 《크리스천문학나무》 신인작품상 소설 「돌을 든 여인」 당선

2003년 《생명의 말씀 사》 전국 독후감 대회 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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