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공론] "할머니 시후 요놈도 오줌발이 좀 센가 봐요~ ㅎㅎㅎ

  • 오피니언
  • 문예공론

[문예공론] "할머니 시후 요놈도 오줌발이 좀 센가 봐요~ ㅎㅎㅎ

연두흠/수필가

  • 승인 2023-05-24 10:21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아침에 눈을 떠보니 소파였다. 몸이 무겁고 아프다. 어제 퇴근이 늦은 터라 11시에 저녁밥을 먹고 소파에 누워 잠깐 쉬었던 것 같은데 그대로 잠이 들어 버린 것이다.

안방으로 가보니 침대 위에 중3 딸과 초6 아들, 그리고 아내가 사이좋게 자고 있었다.

우~씨~ 완벽한 왕따다!!! 인기척에 눈이 뜬 아내에게 "너희들은 계획이 다 있었구나"라고 말하자 아내는 "깨워도 안 일어났잖아"라고 웃으며 말했다.

화장실에 들어가니 변기 앞쪽 바닥에 오줌이 고여 있었다. 초등학생 막내아들의 짓이다. 새벽에 비몽사몽인 상태에서 변기를 상대로 영점조준에 실패한 것으로 추정된다. 반박할 수 없는 완전 범죄다~ 늘 아내는 범인이 나라고 의심해 왔었다.



드디어 오늘 난 누명을 벗을 수 있다.

"응~ 요놈 이거 오늘 딱 걸렸다!" 샤워기로 물청소를 하기 전 난 현장검증에 들어갔다.

영양제를 먹여서 그런가… 오줌이 노란 게 좀 걱정도 되기도 하고, 변기 밑 바닥에 조금 고여있던 오줌의 모양이 귀여워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새벽에 혼자 일어나 비몽사몽한 상태로 쪼그마한 물총으로 변기 여기저기 오줌을 난사를 해놓고 껌딱지처럼 저렇게 엄마 옆에 꼭 붙어서 자고 있는 막내가 더 귀엽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아침 수영을 하고 대전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요강에 오줌을 누던 생각이 났다.

어릴 적 나는 새벽에 쉬가 마려우면 화장실에 가기가 무서웠다.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라고 말하는 화장실 귀신이 정말로 나타날 것만 같아서였다.

두 살 위였던 형은 의젓하고 성격이 좋아 화장실을 같이 가줬다. 오줌을 다 눌 때까지 "형 먼저 가면 안 돼"라고 말하면 형은 잠에 취했어도 늘 "응"이라고 대답을 해줘 나를 안심시켰다. 가끔 형이 너무 깊게 잠들어 일어나지 못할 때면 난 할머니를 깨웠다. "할머니 오줌 마려워~"라고….

어느 날부터 잠들기 전 할머니는 방 한 편에 양은 요강을 준비해 주셨다. 좋았다. 형과 할머니가 바로 옆에 있으니 무섭지 않았다.

나는 손강(孫康) 과 차윤(車胤)처럼 눈과 반딧불로 공부를 하진 않았다. 하지만 컴컴한 방을 채워주던 달빛을 삼아 새벽에 요강에 오줌을 누었다.

오줌이 마려워 잠에서 깨어날 때면 고추가 장총으로 변한다. 거리와 각도를 본능적으로 계산해야 하는 변수가 생기는 것이다. 잠이 덜 깬 상태로 오직 달빛에 의지해 나름대로 요강에 정조준을 했던 것인데… 아침이면 요강 주변 바닥은 늘 오줌이었다.

이른 아침 할머니께서는 요강에 차있는 오줌을 화장실 변기에 버리셨고 깨끗이 물로 청소를 하신 뒤 요강을 거꾸로 뒤집어 물이 잘빠지도록 벽에 살짝 기대어 놓으셨다.

요강 주변에는 오줌이 흥건했지만 할머니는 단 한 번도 나를 꾸짖거나 나무라지 않으셨던 것 같다. 아침마다 할머니는 요강 주변의 오줌을 걸레로 닦으시면서도 사랑하는 손주의 오줌발이 세다며 귀여워 해주셨고 웃으시며 칭찬해 주셨던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요강을 쓰던 모습은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변기 주변과 바닥에 오줌을 누운 막내아들을 보며 나는 여전히 할머니의 사랑이 진행형임을 느낄 수 있었다.

"할머니 시후 요놈도 오줌발이 좀 센가 봐요~ ㅎㅎㅎ"

※주: 시후는 필자의 막내아들

연두흠/수필가

2023051101000872800035361
연두흠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학대 마음 상처는 나았을까… 연명치료 아이 결국 무연고 장례
  2. 원금보장·고수익에 현혹…대전서도 투자리딩 사기 피해 잇달아 '주의'
  3. 김정겸 충남대 총장 "구성원 협의통해 글로컬 방향 제시… 통합은 긴 호흡으로 준비"
  4. [대전미술 아카이브] 1970년대 대전미술의 활동 '제22회 국전 대전 전시'
  5. 대통령실지역기자단, 홍철호 정무수석 ‘무례 발언’ 강력 비판
  1. 20년 새 달라진 교사들의 교직 인식… 스트레스 1위 '학생 위반행위, 학부모 항의·소란'
  2. [대전다문화] 헌혈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
  3. [사설] '출연연 정년 65세 연장법안' 처리돼야
  4. [대전다문화] 여러 나라의 전화 받을 때의 표현 알아보기
  5. [대전다문화] 달라서 좋아? 달라도 좋아!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시와 충남도가 행정구역 통합을 향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홍성현 충남도의회 의장은 21일 옛 충남도청사에서 대전시와 충남도를 통합한 '통합 지방자치단체'출범 추진을 위한 공동 선언문에 서명했다. 대전시와 충남도는 수도권 일극 체제 극복, 지방소멸 방지를 위해 충청권 행정구역 통합 추진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대를 갖고 뜻을 모아왔으며, 이번 공동 선언을 통해 통합 논의를 본격화하기로 합의했다. 이날 공동 선언문을 통해 두 시·도는 통합 지방자치단체를 설치하기 위한 특별..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자영업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년퇴직을 앞두거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는 소상공인의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자영업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메뉴 등을 주제로 해야 성공한다는 법칙이 있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몰두해 질리도록 파악하고 있어야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때문이다. 자영업은 포화상태인 레드오션으로 불린다. 그러나 위치와 입지 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아이템을 선정하면 성공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에 중도일보는 자영업 시작의 첫 단추를 올바르게 끼울 수 있도록 대전의 주요 상권..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