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으로 가보니 침대 위에 중3 딸과 초6 아들, 그리고 아내가 사이좋게 자고 있었다.
우~씨~ 완벽한 왕따다!!! 인기척에 눈이 뜬 아내에게 "너희들은 계획이 다 있었구나"라고 말하자 아내는 "깨워도 안 일어났잖아"라고 웃으며 말했다.
화장실에 들어가니 변기 앞쪽 바닥에 오줌이 고여 있었다. 초등학생 막내아들의 짓이다. 새벽에 비몽사몽인 상태에서 변기를 상대로 영점조준에 실패한 것으로 추정된다. 반박할 수 없는 완전 범죄다~ 늘 아내는 범인이 나라고 의심해 왔었다.
드디어 오늘 난 누명을 벗을 수 있다.
"응~ 요놈 이거 오늘 딱 걸렸다!" 샤워기로 물청소를 하기 전 난 현장검증에 들어갔다.
영양제를 먹여서 그런가… 오줌이 노란 게 좀 걱정도 되기도 하고, 변기 밑 바닥에 조금 고여있던 오줌의 모양이 귀여워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새벽에 혼자 일어나 비몽사몽한 상태로 쪼그마한 물총으로 변기 여기저기 오줌을 난사를 해놓고 껌딱지처럼 저렇게 엄마 옆에 꼭 붙어서 자고 있는 막내가 더 귀엽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아침 수영을 하고 대전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요강에 오줌을 누던 생각이 났다.
어릴 적 나는 새벽에 쉬가 마려우면 화장실에 가기가 무서웠다.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라고 말하는 화장실 귀신이 정말로 나타날 것만 같아서였다.
두 살 위였던 형은 의젓하고 성격이 좋아 화장실을 같이 가줬다. 오줌을 다 눌 때까지 "형 먼저 가면 안 돼"라고 말하면 형은 잠에 취했어도 늘 "응"이라고 대답을 해줘 나를 안심시켰다. 가끔 형이 너무 깊게 잠들어 일어나지 못할 때면 난 할머니를 깨웠다. "할머니 오줌 마려워~"라고….
어느 날부터 잠들기 전 할머니는 방 한 편에 양은 요강을 준비해 주셨다. 좋았다. 형과 할머니가 바로 옆에 있으니 무섭지 않았다.
나는 손강(孫康) 과 차윤(車胤)처럼 눈과 반딧불로 공부를 하진 않았다. 하지만 컴컴한 방을 채워주던 달빛을 삼아 새벽에 요강에 오줌을 누었다.
오줌이 마려워 잠에서 깨어날 때면 고추가 장총으로 변한다. 거리와 각도를 본능적으로 계산해야 하는 변수가 생기는 것이다. 잠이 덜 깬 상태로 오직 달빛에 의지해 나름대로 요강에 정조준을 했던 것인데… 아침이면 요강 주변 바닥은 늘 오줌이었다.
이른 아침 할머니께서는 요강에 차있는 오줌을 화장실 변기에 버리셨고 깨끗이 물로 청소를 하신 뒤 요강을 거꾸로 뒤집어 물이 잘빠지도록 벽에 살짝 기대어 놓으셨다.
요강 주변에는 오줌이 흥건했지만 할머니는 단 한 번도 나를 꾸짖거나 나무라지 않으셨던 것 같다. 아침마다 할머니는 요강 주변의 오줌을 걸레로 닦으시면서도 사랑하는 손주의 오줌발이 세다며 귀여워 해주셨고 웃으시며 칭찬해 주셨던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요강을 쓰던 모습은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변기 주변과 바닥에 오줌을 누운 막내아들을 보며 나는 여전히 할머니의 사랑이 진행형임을 느낄 수 있었다.
"할머니 시후 요놈도 오줌발이 좀 센가 봐요~ ㅎㅎㅎ"
※주: 시후는 필자의 막내아들
연두흠/수필가
연두흠 |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