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2022-10-20
카톡! "선생님 일기는 꼭 일기장에 써야돼요?" 며칠 전 카카오톡으로 한 통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인사 한줄 없이 밤 10시가 넘은 시각에 도달한 고객님의 메시지였다. '안녕하세요'가 없어서였을까 밤이 늦어서일까 왠지 모를 심통에 잠시 투덜거리다 아무렇지 않은 척 "밤..
2022-10-13
'하늘숨을 쉬는 아이들' 학교 문집을 닮아 표지가 유난히 촌스러웠던 책 한 권이 아직도 서재방 한 켠에 남아있다. 겉장을 넘기자 면지에는 1999. 4. 28. 구입 날짜와 읽고 난 후 생각이 짤막하게 적혀 있다. '곳곳에 배어있는 그 분의 순수한 마음이 좋다. 아이들..
2022-10-06
교사를 꿈꾸며 학창 시절 나의 학교생활에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됐던 부분과 아쉬웠던 부분을 되짚어보았다. 그리고 이는 나의 교직관 지향점이 됐다. 첫 번째는 가치관 교육이다. 단순한 꾸짖음에 의한 가치관 형성과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특히 자..
2022-09-29
녹음 짙은 숲이 여름날의 겉옷이라면 산등성이는 몸이고 계곡의 물은 여름의 영혼이다. 아름다운 초록의 숲속에서 산줄기 따라 새하얗게 흘러가는 계곡물을 떠올려 보라. 그것은 열심히 일하여 결과를 기다리는 순수한 농부의 마음과 같으며, 해맑은 소녀가 세수한 민낯 볼의 물방울..
2022-09-22
"선생님 오늘 단어는 무엇인가요?" 출근해서 내가 매일 하는 일은 칠판에 영어와 한글을 섞어 적는 일이다. 아이들은 영어단어를 읽고 한글을 영어로 바꾼 후 알파벳을 배열해 단어를 쓴다. 가령, Baby를 써 놓으면 '베이비'라 읽고 '아기'라고 쓴다. 또 '손'을 읽고..
2022-08-18
"선생님, 저는 선생님과 보내는 하루하루가 너무 좋아서 5교시 있는 날보다 6교시가 들은 날이 더 좋아요." 나연이가 하교 인사할 때 건넨 말이다. 아이의 표정과 말투에서 자신의 마음이 전달되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읽어져 나도 다정함을 담아 기쁘고 고맙다 대답하였다. 그..
2022-07-28
우리학교는 대부분의 학교가 그렇듯 높은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다. 언덕을 오르자면 숨이 차고 다리가 욱씬거린다. 하지만 산 정상에 이르면 그간의 고통을 잊게 해 주는 기막힌 장관과 상쾌한 바람이 있는 것처럼 우리학교 교문에 들어서면 형형색색의 고운 빛과 그윽한 향기가..
2022-07-07
교직에 들어선지 어느덧 19년, 그리 길지 않은 경력이지만 내게 대전둔산초등학교에서의 2020년도 교직 생활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코로나19라는 팬데믹이 전 세계에 영향을 주었고, 이로 인해 2020년의 교육 현장에는 큰 변화가 생겼다.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
2022-06-16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을 지도한 지도 어느덧 10년이 훌쩍 넘었다. 해마다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 인연을 맺으면서 기쁜 일, 슬픈 일, 기분 나쁜 일, 화나는 일 등을 함께 겪으며 아이들 뿐만 아니라 교사로서 나도 조금씩 조금씩 성장해왔다. 물론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그..
2022-06-09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과 한 해를 보낸다는 것은 뜻깊은 일이다. 어엿한 성인이 되기 위한 준비를 마친 학생들과 대화하는 기쁨을 느낄 수 있고, 학창시절 마지막 선생님과의 추억으로 기억될 시간을 함께 보내는 영광을 누릴 수도 있다. 한편, 고등학교 3학년을 담당하며 보내..
2022-05-26
"우와~이걸 제가 만들었다고요?" 아이들이 블록코드로 직접 제작한 가상현실(VR) 콘텐츠를 종이 VR카드보드를 활용하여 확인하고 탄성을 자아낸다. 학생이 스스로 만든 포켓몬고 같은 증강현실(AR) 콘텐츠를 스마트기기로 확인하며 뿌듯해한다. 학생들과 함께한 실과 수업의..
2022-05-05
어느 날 나는 수업 시간에 복도를 순회하고 있었다. 교실 안을 보니 수업하고 있는 선생님의 모습이 여느 때와 달랐다. 평소에 책임감이 철저했던 선생님이라 더욱 이상하게 보였다. 창 너머 어렴풋이 먼 산을 보고 있는 모습이 수심에 가득 차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곧바로..
2022-04-21
세계적으로 국제결혼, 중도입국, 외국인 등이 증가하면서 다양한 배경의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일부 나라에서 이민 수용 여부에 대한 국민적 갈등, 브렉시트 등 국경의 벽을 높이는 국수주의 회귀와 더불어 코로나19 이후 다른 인종과 문화를 대상으로 한 차별과..
2022-04-14
하필 왜 공인가. 교양 체육에서 끝날 줄 알았다. 대학을 졸업해서 좋았던 점 중 하나는 체육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내 몸인데 내 몸이 아닌 몸. 운동이면 운동, 춤이면 춤, 도무지 주인 말을 듣지 않는 몸치의 표본이다. 한데, 친목 피구라니! 마스크에 갇히기..
2022-03-24
S를 처음 만난 것은 코로나의 기세가 맹렬하던 2020년의 가을쯤이었다. 당시 우리 반에는 주의력결핍으로 학교생활에 어려움이 있는 학생 H가 있었는데, 이 학생은 학교 곳곳을 자유롭게 누비며 여러 가지 사건을 만들어내곤 했었다. 수업이 시작된 지 5분쯤 지났을 무렵,..
2022-03-10
올해는 세종교육청 출범 1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한해이다.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미래를 위해 진지하게 숙고해야 할 시기이다. 교육회복을 위해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여 새롭게 시작해야 할 시점임에는 분명하다. 식물이나 물건이 쓰러지지 않게 받치어 세우는..
2022-03-03
해마다 2월은 학교가 가장 분주하고 바쁠 때다. 매년 되풀이되는 일이지만 매번 새롭다. 교직원은 책걸상 등 시설에 미비한 것은 없는지 점검하고, 교과서를 주문하며 학급 배정을 살핀다. 코로나19 방역 대책을 점검하는 것 정도가 기존에 살펴볼 수 없던 새로운 준비 사항일..
2022-02-10
울긋불긋한 숲이 가을의 겉옷이라면 산등성이는 가을의 몸이고 계곡의 물은 가을의 속살이다. 아름다운 단풍잎 숲속에서 산줄기 따라 새하얗게 흘러가는 계곡물을 떠올려 보라. 그것은 열심히 일하여 결과를 기다리는 순수한 농부의 마음과 같으며, 해맑고 수줍은 소녀가 세수한 민낯..
2022-01-20
방학 중에도 인조잔디가 깔린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100명 남짓한 학생들이 매달 5000원의 회비로 축구를 배우고 있다. 개중에는 여학생이 30명 정도 된다. 작년 3월에 사단법인 대전축구스포츠클럽과 스포츠교육 지원 협약을 맺은 덕분이다. 특..
2022-01-12
학교가 코로나 시대로 기존의 학교와는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마스크로 얼굴의 반을 가린 채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며 표정과 얼굴을 보며 배우는 수업이 없어지고, 급식을 먹으려 떠들고 웃고 대화하는 아이들의 모습도 보기 힘들다. 교무실에서 선생님들이 함께 생활지도와 수업에..
2021-12-09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님, '사운드 오브 뮤직'의 마리아 선생님은 어린 시절부터 내가 꿈꾸어 온 선생님의 모습이다. 누군가는 내게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환상일 뿐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이상적인 교사가 되는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아이..
2021-11-18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다. 더욱 마음이 안 좋았던 건 아이가 떠나기 하루 전에도 나는 그 반에서 아이들을 웃겨가면서 수업을 했다는 것이다. 삶과 죽음을 갈등했던 영혼 앞에서 나는 무엇을 가르쳤던 걸까. 그날 밤 늦게까지 뒤척이며 시를 적어 내려갔다. 시 말미의 독백 사..
2021-10-28
골프경기에서 온 그린(On Green)이란 볼이 그린에 올라오는 것으로 원 온더 그린은 한번의 티샷이 바로 온그린하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올림픽 경기에서 온 그린, 원 온더 그린하는 선수들을 볼 때 짜릿한 감정이 앞서지만, 그 뒤에는 얼마나 많은 벙커샷과 그들의 좌절..
2021-10-07
당연한 것들을 기다립니다. 그때는 알지 못했죠 우리가 무얼 누리는지 거릴 걷고 친굴 만나고 손을 잡고 껴안아 주던 것 우리에게 너무 당연한 것들 처음엔 쉽게 여겼죠 금세 또 지나갈 거라고 봄이 오고 하늘 빛나고 꽃이 피고 바람 살랑이면은 우린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구..
2021-09-24
"안녕하세요! 이사장님, 저는 교육청 소통담당관에 근무하는 이호성 주무관입니다. 8월 말에 교육감과 함께 하는 공감데이트를 할 수 있을까요? "네? 저는 세종예술고 교사 박영주인데요. 그리고 무슨 공감데이트를?" 지난 8월 초 교육청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