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교사로 누린 행복

  • 오피니언
  • 교단만필

[교단만필] 교사로 누린 행복

이순옥 음봉초등학교 교사

  • 승인 2022-10-13 15:55
  • 신문게재 2022-10-14 18면
  • 김성현 기자김성현 기자
교단만필(교사로 누린 행복-음봉초 이순옥)_수정
이순옥 교사.
'하늘숨을 쉬는 아이들'

학교 문집을 닮아 표지가 유난히 촌스러웠던 책 한 권이 아직도 서재방 한 켠에 남아있다. 겉장을 넘기자 면지에는 1999. 4. 28. 구입 날짜와 읽고 난 후 생각이 짤막하게 적혀 있다.

'곳곳에 배어있는 그 분의 순수한 마음이 좋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그 마음이 좋다. 나도 그처럼.......'

내가 쓴 글귀를 보며 픽 웃음이 절로 나왔다. 교직 경력 20년이 넘자 헤아리는 것조차 귀찮아진 나에게 대학 시절 이런 마음이 있었구나 새삼스러웠다.



대학교 4학년 교육실습 때 알게 된 임길택님, 강원도 산골마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시면서 쓴 동시는 내 마음을 많이 흔들었었다.

제목부터 딱 가슴에 박혔던 '하늘숨을 쉬는 아이들'에는 2022년 지금의 모습과 많이 다른 교직 생활의 모습이 담겨 있다.

책 속에는 작은 주제로 '교사로 누린 행복'에 대해 쓴 부분이 있다.

탄광마을에서 근무했을 때 그분은 탄광 굴속이 무엇보다도 궁금했고, 반장 아이 부모님이 굴 하나를 책임지고 있는 덕분에 흔쾌히 굴 구경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글 말미에 그 경험 하나만으로도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을 누구와 바꿀 생각이 없다고 적혀 있다. 고작 그만한 일이 교사로 누린 행복이라고 말하는 게 억지스럽다 느끼는 분도 있겠지만 그분은 그때가 담임다운 대접을 받은 한 번의 일이라고 했다.

교사로 20년 넘게 지내오면서 나는 어떤 행복을 누렸을까? 가만히 생각해 본다.

내성적이고 낯을 가리는 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게 어렵고 힘들다. 그런 내가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매년 새롭게 만나는 아이들 뿐이다.

그 아이들을 만날 때 나는 두려움을 느끼거나 소극적이지 않다. 주변 동료나 친구들에게 칭찬과 사랑 표현이 인색한 내가 아이들에게는 더 없이 후하다. 경력이 쌓이면서 나는 아이들에게 더 둥글둥글해졌다.

예전에 어떤 분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 교사들 대부분은 학창 시절에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인 경우가 많아 그렇지 않은 아이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고 젊은 날의 나도 그러했던 것 같다. 하지만 요즘 나의 시선은 많이 달라졌다. 오히려 장난이 많고 엉뚱한 아이들이 너무 좋다. 내가 해보지 못한 장난과 노는 일에 진심인 아이들을 보면 겉으로는 도대체 왜 그러냐고 장난 좀 그만하라고 작은 핀잔을 주지만 속으로는 한없이 응원해 주고 있다.

특히 올해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를 즐겁게 해 주는 아이들이 많다. 몇 해 전에 만난 한 아이는 노는 걸 너무 좋아했다. 중간놀이 시간에 화장실 가는 시간이 아까워 운동장에 소변을 봐 경악하게 했던 그 아이는 오늘도 신나게 놀며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문득 그리워진다.

정말 다양한 캐릭터를 가진 아이들을 매년 새롭게 만나는 것으로 내 삶이 지루하지 않은 것. 그것이 내가 교사로 누린 행복이 아닐까 한다.

또 하나 교사로 누린 행복을 더하게 만들어 주었던 건, 크고 작은 일들로 한 해를 무사히 보내느라 녹초가 되어 있는 나에게 학년말 학부모님의 진심이 담긴 문자 한 통이었다.

"올 한 해 우리 아이의 선생님이 되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이것으로 '교사로 누린 행복' 충분하다./이순옥 음봉초등학교 교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고교 당일 급식파업에 학생 단축수업 '파장'
  2. 대전 오월드서 에어컨 실외기 설치 작업자 추락해 사망
  3. 열악했던 대전 여성노숙인 쉼터…지원 손길로 '확 달라졌다'
  4. "뿌리부터 첨단산업까지… 지역과 함께 혁신·성장하는 대학"
  5. 대전 중구 교육부 평생학습도시 신규 선정 '중구가 대학, 온마을이 캠퍼스'
  1. 대전교사들 "학교 CCTV 의무화, 사건 예방에 도움 안돼" 의무화 입법에 반발
  2. 계룡산성 道지정문화재 등록 5년째 '보류'…성벽과 기와 무너지고 흩어져
  3. 대전 금고동 주민들 "매립장·하수처리 공사장 먼지에 농사 망칠판" 호소
  4. 사랑의 재활용 나눔장터 ‘북적북적’
  5.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헤드라인 뉴스


[르포] 4·2 재보궐 현장…"국민통합 민주주의 실현해야"

[르포] 4·2 재보궐 현장…"국민통합 민주주의 실현해야"

"탄핵정국 속 두 쪽으로 갈라진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고 민주주의가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4·2 재보궐선거 본 투표 당일인 2일 시의원을 뽑는 대전 유성구 주민에게선 사뭇 비장함이 느껴졌다. '민주주의의 꽃' 선거를 통해 주권재민(主權在民) 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발현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저마다 투표소로 향한 것이다. 오전 10시에 방문한 유성구제2선거구의 온천2동 제6투표소 대전어은중학교는 다소 한산한 풍경이었다. 투표 시작 후 4시간이 흘렀지만 누적 투표수는 고작 200표 남짓에 불과했다. 낮은 투표율을 짐..

`눈덩이 가계 빚` 1인당 가계 빚 9600만 원 육박
'눈덩이 가계 빚' 1인당 가계 빚 9600만 원 육박

국내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이 약 9500여 만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40대 차주의 평균 대출 잔액은 1억 1073만 원으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이 한국은행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은 9553만 원으로 조사됐다. 이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지난 2012년 이후 역대 최고 수준이다. 1인당 대출 잔액은 지난 2023년 2분기 말(9332만 원) 이후 6분기 연속 증가했다. 1년 전인 2..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는 어디?... 동구 가오중, 시청역6번출구 등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는 어디?... 동구 가오중, 시청역6번출구 등

숨겨진 명곡이 재조명 받는다. 1990년대 옷 스타일도 다시금 유행이 돌아오기도 한다. 이를 이른바 '역주행'이라 한다. 단순히 음악과 옷에 국한되지 않는다. 상권은 침체된 분위기를 되살려 재차 살아난다. 신규 분양이 되며 세대 수 상승에 인구가 늘기도 하고, 옛 정취와 향수가 소비자를 끌어모으기도 한다. 원도심과 신도시 경계를 가리지 않는다. 다시금 상권이 살아나는 기미를 보이는 역주행 상권이 지역에서 다시금 뜨고 있다. 여러 업종이 새롭게 생기고, 뒤섞여 소비자를 불러 모으며 재차 발전한다. 이미 유명한 상권은 자영업자에게 비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 한산한 투표소 한산한 투표소

  •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앞 ‘파면VS복귀’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앞 ‘파면VS복귀’

  •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