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옥 교사. |
학교 문집을 닮아 표지가 유난히 촌스러웠던 책 한 권이 아직도 서재방 한 켠에 남아있다. 겉장을 넘기자 면지에는 1999. 4. 28. 구입 날짜와 읽고 난 후 생각이 짤막하게 적혀 있다.
'곳곳에 배어있는 그 분의 순수한 마음이 좋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그 마음이 좋다. 나도 그처럼.......'
내가 쓴 글귀를 보며 픽 웃음이 절로 나왔다. 교직 경력 20년이 넘자 헤아리는 것조차 귀찮아진 나에게 대학 시절 이런 마음이 있었구나 새삼스러웠다.
대학교 4학년 교육실습 때 알게 된 임길택님, 강원도 산골마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시면서 쓴 동시는 내 마음을 많이 흔들었었다.
제목부터 딱 가슴에 박혔던 '하늘숨을 쉬는 아이들'에는 2022년 지금의 모습과 많이 다른 교직 생활의 모습이 담겨 있다.
책 속에는 작은 주제로 '교사로 누린 행복'에 대해 쓴 부분이 있다.
탄광마을에서 근무했을 때 그분은 탄광 굴속이 무엇보다도 궁금했고, 반장 아이 부모님이 굴 하나를 책임지고 있는 덕분에 흔쾌히 굴 구경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글 말미에 그 경험 하나만으로도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을 누구와 바꿀 생각이 없다고 적혀 있다. 고작 그만한 일이 교사로 누린 행복이라고 말하는 게 억지스럽다 느끼는 분도 있겠지만 그분은 그때가 담임다운 대접을 받은 한 번의 일이라고 했다.
교사로 20년 넘게 지내오면서 나는 어떤 행복을 누렸을까? 가만히 생각해 본다.
내성적이고 낯을 가리는 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게 어렵고 힘들다. 그런 내가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매년 새롭게 만나는 아이들 뿐이다.
그 아이들을 만날 때 나는 두려움을 느끼거나 소극적이지 않다. 주변 동료나 친구들에게 칭찬과 사랑 표현이 인색한 내가 아이들에게는 더 없이 후하다. 경력이 쌓이면서 나는 아이들에게 더 둥글둥글해졌다.
예전에 어떤 분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 교사들 대부분은 학창 시절에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인 경우가 많아 그렇지 않은 아이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고 젊은 날의 나도 그러했던 것 같다. 하지만 요즘 나의 시선은 많이 달라졌다. 오히려 장난이 많고 엉뚱한 아이들이 너무 좋다. 내가 해보지 못한 장난과 노는 일에 진심인 아이들을 보면 겉으로는 도대체 왜 그러냐고 장난 좀 그만하라고 작은 핀잔을 주지만 속으로는 한없이 응원해 주고 있다.
특히 올해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를 즐겁게 해 주는 아이들이 많다. 몇 해 전에 만난 한 아이는 노는 걸 너무 좋아했다. 중간놀이 시간에 화장실 가는 시간이 아까워 운동장에 소변을 봐 경악하게 했던 그 아이는 오늘도 신나게 놀며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문득 그리워진다.
정말 다양한 캐릭터를 가진 아이들을 매년 새롭게 만나는 것으로 내 삶이 지루하지 않은 것. 그것이 내가 교사로 누린 행복이 아닐까 한다.
또 하나 교사로 누린 행복을 더하게 만들어 주었던 건, 크고 작은 일들로 한 해를 무사히 보내느라 녹초가 되어 있는 나에게 학년말 학부모님의 진심이 담긴 문자 한 통이었다.
"올 한 해 우리 아이의 선생님이 되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이것으로 '교사로 누린 행복' 충분하다./이순옥 음봉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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