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물을 보며 교육을 생각하다

  • 오피니언
  • 교단만필

[교단만필] 물을 보며 교육을 생각하다

한기온 전 대전봉명중힉교 교장.수필가

  • 승인 2022-02-10 14:14
  • 신문게재 2022-02-11 18면
  • 김소희 기자김소희 기자
증명사진(한기온)
울긋불긋한 숲이 가을의 겉옷이라면 산등성이는 가을의 몸이고 계곡의 물은 가을의 속살이다. 아름다운 단풍잎 숲속에서 산줄기 따라 새하얗게 흘러가는 계곡물을 떠올려 보라. 그것은 열심히 일하여 결과를 기다리는 순수한 농부의 마음과 같으며, 해맑고 수줍은 소녀가 세수한 민낯 볼의 물방울과도 같다. 그래서 그 맑고 순수함의 여림을 어느 미인의 살갗에 견줄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보라. 물은 도(道)에 가깝다. '최상의 선은 물과 같으니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기를 잘하면서 다투지 않으며, 많은 사람이 싫어하는 곳에 머문다'라고 노자의 도덕경에서 말하고 있다. 물은 고정된 모습이 없이 무한한 변화 가능성이 있는 유연함이 있고, 물의 흐름은 높은 곳을 사양하고 낮은 곳으로 향하는 겸손함이 있으며, 또한 물은 지형에 따라 항상 물줄기를 바꿀 수 있는 적응력이 있고, 그리고 물은 영원한 모습이란 것이 없이 모양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이 물의 위대함이라고 했다.

물은 또 우리에게 자신의 흐름으로 생명의 본질을 잘 설파하고 있다. '상태가 아니라 변화이고, 양이 아니라 질이며, 물질과 운동의 단순한 재분배가 아니라 부단한 창조'라는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의 '생명의 정의'에 물 말고 대입할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몇 해 전 가을에 나는 등산하러 계룡산 계곡으로 친구를 만나러 갔다. 그 친구는 자주하는 등산로의 계곡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잠시 앉아서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며, 계곡물을 보면서 어느 스님한테 들은 말을 하였다.



"내 스승은 저기 저 물이오. 물은 갇히면 썩는다오. 그러나 살아서는 바다로 행하는 자기의 길을 결코 변경하지 않소. 평생 쉬지 않을뿐더러 앞을 다투지도 않고 순서를 지키면서 흘러가오. 빈 곳을 채우지 않고 앞으로 나가지 않을 뿐 아니라 앞에 장애가 나타나면 자기 수위를 높여서 장애를 돌파하지 부정한 수단을 쓰지 않는 것이 또한 저 물이오"라고 하면서 평소 그 친구답지 않은 경지의 말을 하였다.

물이 낭떠러지를 때리듯 나의 뇌리를 때렸다. 나는 단풍잎을 따서 물 위에 뿌렸다. 그 친구는 한동안 침묵했다. 물소리가 저 혼자 돌돌거렸다. 마치 그분의 가슴 속에 숨어 있는 언어를 낭독하는 것처럼.

등산을 어느 정도 하고 하산길에 나는 그 친구와 같이 산개울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물속에 비쳐 드는 하늘이 점점 넓어졌다. 단풍잎이 아랫골이 가까워지는 산굽이에서 떠내려오며 멀리 가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서 말하였다. "우리도 이 세상에 왔다가 저렇게 보이지 않는 때가 오겠지"하면서 그동안 교육에 헌신하고 전념한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니 앞으로도 부끄럼 없이 잘 살자고 말했다.

그 친구와 함께한 청명한 가을 하늘은 마치 계룡산 계곡의 맑은 물을 인도하면서 산비둘기 울음소리와 같이 오케스트라 연주를 지휘해 주는 것 같았다. 나뭇가지 사이로 비추는 햇살은 계곡물 소리를 주워 담듯이 졸졸거리는 자연의 음악을 들으면서 우리는 다음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그렇다. 물은 인간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선물이다. 즉 인간의 가장 내밀한 안방이요 핵심이며, 진리와 정의이다. 그리고 물은 영혼의 소리가 들려오는 내면의 법이다. 이 법의 소리는 언제나 선을 사랑하고 행하여야 하며, 악을 피해야 한다고 인간에게 타이른다.

금년 가을에도 나는 한적한 계곡의 물가로 가겠다. 흘러가는 물에 발을 담그고 앉아서 물새 우는 소리를 듣겠다. 울긋불긋 단풍잎이 보이는 계곡물에서 말하지 못하는 고기들의 언어를 묵상해 보겠다. 지금 손바닥으로 떠보는 물이 이제나 저제나 같은 물이나, 순간마다 새로운 것이라는 것을. 그 비밀의 괘를 가만히 비집고 교육을 들여다보고 싶다.
한기온 전 대전봉명중힉교 교장.수필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가을단풍 새 명소된 대전 장태산휴양림…인근 정신요양시설 응급실 '불안불안'
  2. [사설] 의료계 '정원 조정 방안', 검토할 만하다
  3. [사설] 충남공무원노조가 긍정 평가한 충남도의회
  4. 대전사랑메세나에서 카페소소한과 함께 발달장애인들에게 휘낭시에 선물
  5. 제90차 지역정책포럼 및 학술컨퍼런스 개최
  1. '한국탁구 국가대표 2024' 나만의 우표로 만나다
  2. 국방과학일류도시 대전 위한 교류장 열려
  3. 대전 유성 둔곡 A4블록 공공주택 연말 첫삽 뜨나
  4. 충남대병원 응급의학과 학술적 업적 수상 잇달아…이번엔 국제학자상
  5. 건양대병원, 시술과 수술을 한 곳에서 '새 수술센터 개소'

헤드라인 뉴스


아침밥 안 먹는 중·고생들… 대전 45% 달해 ‘전국 최다’

아침밥 안 먹는 중·고생들… 대전 45% 달해 ‘전국 최다’

대전지역 청소년들의 아침식사 결식률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적극적으로 대응해 학생들의 건강 증진이 절실한 상황이지만 대전교육청은 바른 식생활 교육을 축소한 것으로 나타나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26일 교육부 2024 청소년건강행태조사 분석 결과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학생들의 아침식사 결식률은 지난해보다 1.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는 전국 800개 표본학교의 중·고등학생 약 6만 명을 대상으로 흡연, 음주, 식생활, 정신건강 등에 대해 자기기입식 온라인조사를 통해 진행됐다. 대전지역 학생들의 아침..

[기획] 대전, 트램부터 신교통수단까지… 도시균형발전 초석
[기획] 대전, 트램부터 신교통수단까지… 도시균형발전 초석

대전시가 충청권 메가시티 완성의 시작점인 광역교통망 구축에 힘을 쏟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도시철도 2호선 트램부터 신교통수단 시범사업 등을 추진하면서 도시균형발전 초석을 다지는 것을 넘어 충청 광역 교통망의 거점 도시가 되기 위한 준비에 나섰다. 28년 만에 도시철도 2호선 트램이 올해 연말 착공한다. 도시철도 2호선은 과거 1995년 계획을 시작으로 96년 건설교통부 기본계획 승인을 받으면서 추진 됐다. 이후 2012년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면서 사업이 물꼬를 틀 것으로 기대됐지만 자기부상열차에서 트램으로 계획이 변경되면..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대전 유통업계가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겨냥한 크리스마스트리와 대대적인 마케팅으로 겨울철 대목을 노리고 있다. 우선 대전신세계 Art&Science는 본격적인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26일 백화점 1층 중앙보이드에서 크리스마스트리를 선보였다. 크리스마스 연출은 '조이 에브리웨어(Joy Everywhere)'를 테마로 조성했으며, 크리스마스트리 외에도 건물 외관 역시 크리스마스 조명과 미디어 파사드를 준비해 백화점을 찾은 고객이 크리스마스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 대전 신세계는 12월 24일까지 매일 선물이 쏟아지는 '어드벤..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 첫 눈 맞으며 출근 첫 눈 맞으며 출근

  •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