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년이 시작되기 며칠 전, 학부모님께 연락을 한 통 받았다. S의 부모님이었다. 혹시 가능하다면 새 학년이 시작되기 전에 먼저 선생님을 뵙고 싶다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긴 시간 동안 S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S가 어떤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지 등 부모님의 진심 어린 걱정을 듣게 되었다. 그동안의 경험을 살려 열심히 지도하겠다는 나의 말에 부모님의 근심 가득한 얼굴이 조금은 밝아졌다.
나의 예상보다 S의 학교생활은 큰 문제 없이 흘러갔다. 자신의 의견대로 되지 않을 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소 과격하여 주변의 친구들과 갈등을 빚는 일이 종종 있었지만 크게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생각보다 S는 나를 잘 따라주었고, 우리는 그렇게 즐거운 학교생활을 이어나갔다.
날씨가 너무도 화창했던 5월의 어느 날, 드디어 고비가 찾아왔다. 영어 교과전담 시간이 끝날 무렵, 한 학생이 헐레벌떡 교실로 뛰어 들어왔다. "선생님, 큰일 났어요. S가 영어선생님을 붙잡고 놔주질 않고 있어요!" 나는 영어실로 달려갔고 평소와 다른 눈빛의 S를 보았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S가 수업시간에 다른 친구의 가위를 빼앗아 돌아다니면서 친구들에게 위협적인 행동을 하였고, 몇 번의 경고 끝에 영어선생님이 가위를 빼앗은 것이다. 수업이 끝나고 돌려주겠다는 선생님의 말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위를 돌려달라며 수업을 방해했고, 수업이 끝날 무렵부터는 선생님의 팔을 잡고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영어선생님께 가위를 받아 S에게 주면서,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일단 연구실로 데려갔다. 대화를 시도하였지만 입을 꾹 다물었고 눈도 나와 마주치지 않았으며 연구실을 뛰쳐나가려고 하였다. 이보다 더한 일도 겪어봤기에 나는 평정심을 잃지 않고 S를 꼭 잡고 있었고, S의 아버지께서 오신 이후에야 상황은 종료되었다.
그동안의 크고 작은 여러 일을 되짚어보면 S는 자신이 소외되었다고 느낄 때, 극도의 불안감을 보이면서 돌발행동을 하는 일이 잦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변 친구들과 좋은 관계 맺기가 이뤄져야 하는데, 이 부분이 참 어려웠다. 수업이 끝난 후에 수시로 그룹별·개인별 상담을 하였고, 코로나 상황에도 '마니또'를 정해서 친구에게 편지 써주기 등을 하였다. 하교 후에는 친구들과 왕래가 거의 없는 S를 위해 모둠별 과제도 자주 내주었고, 가끔 한 번씩은 토요일에 마음 맞는 친구 몇몇과 선생님과 함께 학교에서 간식을 먹으며 과제를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시간을 보내면서 S의 생활도 많이 안정을 찾아갔으며, 무엇보다 주변 친구들의 S에 대한 인식이 서서히 바뀌어 가는 것이 느껴졌다. 이후로도 S는 크고 작은 여러 사건을 만들었다. 그래도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바로 자신의 잘못에 대해 인정하는 용기가 생겼다는 것이다.
졸업식 날, 선생님께 미처 전하지 못한 말이 있다며 집에 갔던 S가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그동안 선생님 속상하게 만들어서 정말 죄송해요. 선생님 감사해요, 그리고 사랑해요."
자신의 감정표현에 너무나 솔직한 아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S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이 몇 마디 말이 나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김영태 문지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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