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식탐
2024-10-30
유튜브 먹방 세계의 입문은 'ASMR'이었다. 어느 기사에서 순위를 달리는 먹방 유튜버들을 소개한 걸 보고나서였다. 그 중 한 먹방 유튜버를 선택해 들어간 게 시작이었다. 그땐 ASMR이 뭔지도 몰랐다. 식탁위에 온갖 디저트가 올라와 있고 주인공은 검은색 옷을 입은 상..
2024-10-09
금쪽같은 휴가를 어떻게 보낼까 궁리하다 첫날은 가족과 고창 선운사에 가기로 했다. 언니 친구 아들이 그 곳 카페 피자에 꽂혀 틈만 나면 먹으러 간다고 한다. 우리는 밑져야 본전이다 생각하고 선운사로 달렸다. 드넓은 선운사 주차장엔 차가 가득했다. 아, 축제 첫날이었다...
2024-09-11
친구의 언니 가족은 1980년대 중반 미국으로 이민 갔다. 친구의 형부는 한국에서 꽤 괜찮은 직장에 다녔으나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 땅을 밟았다. 한국 이민자 대부분이 그렇듯 친구 언니네도 세탁소부터 시작했다. 열심히 일한 덕분에 수영장이 딸린 집도 장만하고 큰..
2024-08-21
대학 2학년과 4학년 때 학교 기숙사 생활을 했었다. 학기마다 제비뽑기로 방 배정을 받는데 방을 누구와 쓰느냐가 중요했다. 성격이 안 맞아 중간에 나가기도 하니까. 2학년 1학기는 정치사회적으론 격동기였으나 개인적으론 '화양연화'였다. 방 식구는 선배였는데 편하고 또..
2024-07-24
우당탕탕 쿵. 오른쪽 발목이 기역자로 확 꺾이면서 뚝 하는 느낌이 왔다. '아 망했다, 망했어.' 밤에 집 앞 상가 건물 계단을 내려오다 컴컴해서 발을 헛디뎠다. 사람이 지나가면 자동으로 점등되는데 건물주가 관리비를 아끼려고 그런 건지. 아우 승빨 나. 나도 부주의했다..
2024-05-29
올 봄처럼 이렇게 맑은 날이 있을까요? 한없이 투명한 공기가 먼 산의 숲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연초에 기상청에서 봄에 초강력 미세먼지가 올 것이라고 예보했는데 말이죠. 이런 예보는 언제라도 틀렸으면 좋겠습니다. 휴일에 보문산에 갔다가 대사동 대신초 쪽으로 내려오는 길에..
2024-05-08
초등학교 6학년때였나? 처음으로 밥을 지었다. 모내기철이었을 것이다. 그때만 해도 사람이 일일이 모를 심었기 때문에 농촌에선 모내기철이 제일 바쁜 시기였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큰 맘 먹고 쌀을 씻어서 가마솥에 안쳐 불을 땠다. 얼추 밥이 된 것 같아 솥뚜껑을 열자 뜨..
2024-04-17
대전에서 군산을 가려면 익산역에서 환승해야 한다. 익산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아침을 먹었다. 떡 세 개, 찐계란, 딸기. 기차에서 먹으려다 쿨쿨 자느라 그새를 놓쳤다. 일어나자마자 밥솥에 찐 떡이 말랑말랑했다. 계란, 딸기까지 먹고 나니 허기가 가셨다. 곱게 단장..
2024-03-27
대전 중구 예술가의 집 근처에 김치찌개로 유명한 식당이 있다. 김치찌개는 밥집의 기본 메뉴다. 흔하디 흔한 김치찌개. 하지만 내가 먹어본 김치찌개 중 이곳이 단연 으뜸이다. 나름 분석하자면 육수 때문인 것 같다. TV 프로 '생활의 달인'의 식당들은 하나같이 육수가 남..
2024-02-28
그 식당을 지날 때마다 한번씩 기웃거렸다. 이번엔 문을 쓱 열고 들어갔다. 식당 상호는 딱히 없다. 그냥 '튀르키예 케밥'. 외국음식 식당은 다 그렇다. 베트남 쌀국수, 네팔 요리. 손님은 중년여성들 한 팀과 아랍인 젊은 여성 한 사람. 종업원인 듯한 여성에게 다가갔다..
2024-01-17
평일인데도 손님이 많았습니다. 이 분식집은 주말엔 자리가 없어 밖에서 사람들이 줄지어 서는 곳이에요. 지지난주 오전 일을 끝내고 대흥동에 볼일이 있어 서둘러 시내로 갔지요. 일을 마치고 중앙로 지하상가에 있는 그 분식집으로 들어갔어요. 도대체 얼마나 맛있을까 궁금했거든..
2023-12-27
나는 여행지를 음식으로 기억한다. 부산 돼지국밥, 제주도 몸국, 통영 꿀빵·물메기탕 그리고 여수는 갓김치. 갓김치의 강렬한 첫맛을 못잊어 여수에 갈 때마다 향일암부터 찾는다. 올 겨울 첫 북극한파라더니 여수도 만만찮았다. 중무장을 했는데도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향일..
2023-12-06
'인정이 몹시 그리워지는 어느날 나는 남장(男裝)을 하고 거리에 나섰다.' 가을과 겨울의 경계에서 나는 소설의 이 매혹적인 첫 문장을 떠올린다. 그것은 의도적이지 않다. 그저 몸으로 체득한 강렬한 경험의 기억같은 것이랄까. 나는 초록색 아망구를 푹 눌러쓰고 플라타너스..
2023-11-15
1996년 봄 다니던 직장을 미련없이 때려치웠다. 얼마 안되는 퇴직금이 내 손에 쥐여졌다. 미래에 대한 계획은 안갯속이었다. 그래도 후련했다. 초여름 어느날, 피자가 확 당겼다. 당시 피자집은 '피자 헛' 하나였다. 오류동 미성스포츠 건물(현재 중도일보 건물) 1층에..
2023-10-25
추석 연휴 전날 밤 좀 춥게 잤더니 아침에 일어나자 대번에 목이 쎄에 했다. 시골 집에서 내내 콜록거리고 콧물을 흘렸다. 결국 노란 코가 나오는 걸 보고 심상찮다 생각했다. 대전에 와 병원에 갔더니 비염과 축농증이 같이 왔다며 항생제를 처방했다. 오래전 축농증으로 호되..
2023-09-13
아주 오랜만에 아구찜을 먹었다. 편집국장이 이사 승진으로 데스크들한테 한 턱을 낸 것이다. 회사 앞 길 건너 아구찜 식당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자그마한데 손님이 많았다. 푸짐한 아구찜이 나오자 침이 꼴깍 넘어갔다. 접시에 덜어 큼지막한 살덩이를 입에 넣었다. 오, 잊을..
2023-08-23
여름은 과일의 천국이다. 복숭아, 참외, 자두, 멜론, 수박, 포도. 여기에 수입산 바나나, 파인애플, 망고도 빠질 수 없다. 더위에 지쳐 입맛이 없을 때 과일은 식욕을 돋우고 몸에 생기를 준다. 새콤달콤한 자두와 꿀같은 멜론, 달콤한 향이 일품인 황도와 물이 많은 수..
2023-08-02
요란한 새 소리에 잠에서 깼다. 새들의 지저귐이 알람 역할을 한다. 기지개를 켜고 안경을 집어 쓴다. 자 이제 또 뛰어볼까? 주방에서 거실로, 베란다로, 안방으로, 건넌방으로, 욕실로. 나의 부산한 아침 풍경이다. 먼저 TV 뉴스를 틀고 냉장고를 열어 수제 요거트를 꺼..
2023-07-12
10여년 전 초여름에 거문도에 갈 기회가 있었다. 지인 소개로 여행사 팸투어에 따라 나서게 된 것이다. 내내 가고 싶었던 섬이어서 휘파람을 불며 배낭을 꾸렸다. 오래 전 난 거문도를 38선 바로 아래 백령도 근처 어디 쯤에 있는 섬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남해에 있다..
2023-06-14
재작년 1월 설을 앞두고 편지 한통을 받았다. 발신인은 대덕구에 주소를 둔 황수남이라고 했다. 모르는 사람인데 누굴까? 봉투를 뜯어 편지지를 꺼내 읽었다. 첫 문장은 '나는 80세가 넘는 나이의 중도일보를 구독하고 있는 대전의 변두리에 사는 사람입니다'라고 시작했다...
2023-05-10
10여년 전 점심에 회사 사람 몇이서 대흥동에 있는 식당에 갔다. 회사 동료 지인이 밥을 산다길래 줄래줄래 따라간 거였다. 냉면이 나왔다. 애걔걔, 양이 왜이리 적어? 이건 애피타이저 수준인데? 젓가락으로 서너번 건지니까 국물만 남았다. 간에 기별도 안가는 냉면이 야속..
2023-04-19
코로나 19가 한국에 상륙한 그 해 봄, 대전 지하상가에 확진자가 다녀갔다는 뉴스에 그 곳은 한동안 개미새끼 한 마리 없었다. 방역요원들이 부랴부랴 소독하고 시민들은 혹시 나도 감염되지 않았을까 공포에 떨었다. 올 봄은 언제 그랬냐는 듯 활기가 넘친다. 나는 휴일에 딱..
2023-03-29
국제상품시장에서 석유 다음으로 많이 거래되는 커피. 인류의 커피사랑은 지독하다. 조선말 고종도 아관파천 때 러시아 공사관에서 '가베'를 맛보고 홀딱 반해 커피 애호가가 됐다. 발자크의 커피 사랑은 단순하지 않다. 발자크는 하루 18시간 동안 글을 썼다. 그는 미친 듯이..
2023-03-08
누구는 한다, 누구는 안한다. 도대체 누구 말이 맞는지. 한참 헤맨 끝에 동사무소에 확인한 결과 굴 수협에 문의해 보란다. 굴 작업장이 문을 열었단다. 휴우. 통영 서문시장에서 민진마을까지 걸어서 30분이랬는데 1시간 걸렸다. 딱 그 짝이다. 쫌만 가면 됩니더. '석화..
2023-02-15
겨울이 오면 으레 동네 골목엔 붕어빵 장수가 있다. 고소한 냄새를 풍겨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들던 붕어빵. 단돈 천원에 4~5개로 이것만 먹어도 뱃속이 든든했다. 며칠 전 동네 마트 뒤 후미진 골목에 붕어빵 장수가 있는 걸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 붕어빵 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