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식탐] 바비큐 파티는 물건너 갔지만

  • 오피니언
  • 우난순의 식탐

[우난순의 식탐] 바비큐 파티는 물건너 갔지만

  • 승인 2023-10-25 10:13
  • 수정 2023-10-25 14:16
  • 신문게재 2023-10-26 18면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식탐
추석 연휴 전날 밤 좀 춥게 잤더니 아침에 일어나자 대번에 목이 쎄에 했다. 시골 집에서 내내 콜록거리고 콧물을 흘렸다. 결국 노란 코가 나오는 걸 보고 심상찮다 생각했다. 대전에 와 병원에 갔더니 비염과 축농증이 같이 왔다며 항생제를 처방했다. 오래전 축농증으로 호되게 고생했던 적이 있어서 더럭 겁이 났다. 회사에서도 내내 마스크를 끼고 일했다. 사무실이 건조해 코가 꽉 막히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목구멍에 찐득한 가래가 강력본드처럼 달라붙어 여간 신경쓰이는 게 아니었다. 거기다 독한 항생제로 속이 울렁거리고 배도 살살 아팠다. 몸까지 풍선처럼 빵빵하게 부어서 손을 계속 주물렀다.

이런 차에 천안 사는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주말에 1박 2일로 제부도 가자고. 연휴 전에 친구 엄마가 돌아가셔서 문상을 갔었다. 덕분에(?) 오랜만에 친구 남편들도 만났다. 결혼식 때 보고 처음이었다. 머리가 희끗거리고 얼굴도 주름이 잡혀있지만 다들 편안한 분위기였다. 고향이 서산인 용인 사는 친구가 꺄르르 웃으며 말했다. "대학 다닐 때 난순이 네가 나한테 창문 열면 바다 보이냐고 물어본 거 기억나니?" 내가 그랬나? 천안 친구 남편은 "집사람이 내내 슬퍼하고 기운이 없었는데 친구분들 보고 얼굴이 좀 밝아졌네요"라며 고마워했다. 친구 어머니도 치매를 앓고 계셨는데 갑자기 돌아가신 거였다. 황망한 친구는 얼굴이 반쪽이 돼 초췌했다. 죽음은 언제나 익숙하지 않은 통과의례다.

천안 친구 부부는 답례로 제부도 펜션을 예약해 바비큐 파티를 준비했단다. 제부도. 전부터 가보고 싶었는데. 거기다 바비큐 파티라니.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의사는 말렸다. 아직 치료 중인데 바닷가 찬 밤바람이 도움이 안 될 거라며. 아, 밤하늘 아래 빨간 숯불 위 석쇠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고기와 가리비를 생각하니 침이 꼴깍 넘어갔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비릿한 바람을 맞으며 먹는 고기는 얼마나 맛있을까.

그날 밤 아쉬움을 달래며 이불 속에서 책을 읽다 무심코 방구석을 보았다. 뭔가 반짝였다. 일어나 다가가 보니 비닐조각이었다. 만지자마자 부서졌다. 하도 오래돼서 삭은 것이다. 어디서 떨어진 거지? 손으로 쓸어 담는데 뽀얀 먼지도 도톰하게 묻어났다. 맙소사! 록 그룹 '캔사스'가 인생은 먼지와 같은 거라고 노래했지만 이건 너무 한 것 아닌가? 다음날 오전 병원에 갔다와서 소매를 겉어붙였다. 내 집의 먼지란 먼지는 다 쓸어버리리라! 냉장고 위 먼지는 융단처럼 두툼했다. 희뿌연한 거실 창문을 닦자 밖의 풍경이 또렷했다. 벽지와 방문도 의자를 놓고 위에까지 다 걸레질 했다. 이런 대대적인 청소는 입주 후 처음이다. 다음날까지 청소는 계속됐다. 온 몸이 욱신거리고 손은 사포처럼 거칠어졌다.

두 번째 날 점심은 김칫국을 끓였다. 새콤한 묵은지를 썰어 찌개용 돼지 앞다릿살을 넣고 푹푹 끓였다. 다른 건 필요없다. 이 두 가지만 있으면 된다. 대신 김치와 고기가 훌륭해야 한다. 대접에 가득 푼 다음 뜨거운 밥을 말아 정신없이 퍼 먹었다. 막힌 코가 뻥 뚫리고 가래도 삭아 없어진 것 같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을 들이마셨다. 몸이 개운했다. 오래된 먼지와 함께 내 몸속의 묵은 찌꺼기도 싸악 씻겨나간 기분이다. 신문사에 갓 입사했을 당시 당진에서 국어교사 생활을 하는 과 후배가 놀러와 다음날 아침 이 김칫국을 끓여줬다. 후배는 고기 누린내가 나지 않겠냐며 미심쩍어 했다. 막상 먹어보더니 "어머, 언니 너무 시원하고 맛있어"라며 한 대접 뚝딱 비우고 더 달라고 했다. 김칫국은 요즘도 종종 끓여먹는다. 단순해서 담백한 김칫국. MSG를 마구마구 친 음식은 속이 거북하다. 사람도 김칫국처럼 솔직 담백한 스타일이 좋다. 바람이 불면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지방부장>
우난순 수정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둔산 리빌딩’…대전 둔산 1·2지구, 재건축 움직임 본격 시동
  2. 29일 대전 유성구 일대 정전…엘리베이터 갇힘 등 신고 24건
  3. 대전 치매환자 등록률 46% 전국광역시 '최저'…돌봄부담 여전히 가족에게
  4. 중진공 충남청창사 15기 입교 오리엔테이션 개최
  5. 천안시, 석오 이동녕 선생 미공개 친필자료 담은 전자책 발간
  1. 천안문화재단, 천안예술의전당 전시실 대관 공모 신청 접수
  2. 천안고용노동청, 청년 취업지원 활성화를 위해 10개 대학과 업무협약
  3. 천안시도서관본부, '제61회 도서관 주간' 맞아 다채로운 행사 풍성
  4. '산불 복구비 108억, 회복은 최소 20년'…대전·홍성 2년째 복구작업
  5. 아이 받아줄 사람 없어 '자율 귀가'… 맞벌이 학부모 딜레마

헤드라인 뉴스


`산불 복구비 108억, 회복은 최소 20년`…대전·홍성 2년째 복구작업

'산불 복구비 108억, 회복은 최소 20년'…대전·홍성 2년째 복구작업

2023년 대형산불 발생에 대전과 충남 홍성에서 2년째 복구작업 중으로 이들 지역 산림 복구비용만 총 108억 원가량 투입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많은 복구비뿐 아니라 불에 탄 산림과 생태계를 복원하는 데만 20년 이상이 걸리지만, 최근 10년간 충청권에서 발생한 산불 원인은 입산자의 부주의로 인한 '실화'가 가장 많았다. 30일 중도일보 취재 결과, 2023년 4월 대전 서구 산직동 산불로 당시 축구장 약 800개 면적과 맞먹는 646㏊의 숲이 불에 탔다. 나무를 심어 숲을 복원하는 조림 등 인공복구가 필요한 37㏊에 대해 대전시와..

제4인터넷은행 탄생하나 대전 시선 집중
제4인터넷은행 탄생하나 대전 시선 집중

대전에 본사를 두기로 대전시와 협약을 맺은 한국소호은행(KSB)이 제4인터넷은행 예비인가 신청을 하면서 '대전에 본사를 둔 기업금융 중심 은행 설립'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금융위원회는 지난 25~26일 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 신청서를 제출한 4개 컨소시엄을 대상으로 심사에 착수한다. 민간 외부평가위원회 심사를 비롯해 금융감독원의 심사를 거쳐 오는 6월 중 인터넷은행의 예비인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이번 인가전에 뛰어든 곳은 '한국소호은행'을 비롯해 '소소뱅크', '포도뱅크', 'AM..

4월부터 우유, 맥주, 라면 등 `줄인상`
4월부터 우유, 맥주, 라면 등 '줄인상'

4월 1일부터 우유와 맥주, 라면, 버거 등의 가격이 동시에 인상된다. 올해 이미 커피와 과자, 아이스크림 등이 오른 상태에서 다수 품목이 연이어 가격 인상 행렬에 동참하면서 소비자들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30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4월부터 대형마트와 편의점 등에서 판매하는 맥주와 라면 등의 가격이 줄인상 된다. 우선 편의점에서는 4월 1일 오비맥주와 오뚜기 라면·카레, CJ제일제당 비비고 만두, 하겐다즈 아이스크림, 남양유업 음료, 롯데웰푸드 소시지 등의 가격이 오른다. 가정용 시장의 40% 이상을 차지한 오비맥주 카스는 병과 캔..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꽃샘추위 이겨낸 야구 열기…한화생명 볼파크 세 번째 매진 꽃샘추위 이겨낸 야구 열기…한화생명 볼파크 세 번째 매진

  • ‘어떤 나무를 심을까?’ ‘어떤 나무를 심을까?’

  • 시와 음악을 동시에 즐긴다…‘명시명곡 속 대전’ 개최 시와 음악을 동시에 즐긴다…‘명시명곡 속 대전’ 개최

  • 한화이글스 홈 개막전…대전 한화생명볼파크 첫 매진 한화이글스 홈 개막전…대전 한화생명볼파크 첫 매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