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일을 서둘러 끝내고 매일 병원에 출근도장을 찍었다. 걷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온 몸의 에너지가 걷는 데 집중되기 때문에 병원 갔다오면 녹초가 됐다. 운동을 못하니까 근육도 빠르게 빠져나갔다. 최근 똥배가 은근히 나와 신경 쓰였는데 그것도 들어갔다. 그럼 똥배도 근육이었나?(지금 다시 나옴) 하루는 카톡을 이것저것 훑어보다 화들짝 놀랐다. 기프티콘이 나를 향해 방긋 웃는 게 아닌가. 5월 초 업무적으로 알고 지냈던 사람이 생일 축하한다면서 프랜차이즈 카페 선물교환권을 보낸 걸 이제야 발견한 것이다. 얼굴도 본 적 없고 전화나 카톡만 하는 지극히 사무적인 관계였다. 그것도 작년 12월로 업무관계가 끝나 연락 주고받을 일이 없는데 말이다.
다음 날 병원갔다 오는 길에 당장 카페에 들러 한 꾸러미 들고 나왔다. 사실 이 카페 케이크는 나의 최애 디저트다. 깁스한 다리를 엉거주춤하게 뻗은 채 TV를 보면서 샌드위치를 순식간에 먹었다. 그리고 '스누피의 썸머 베케이션'을 열었다. 튜브를 타고 망중한을 즐기는 스누피가 그려진 화이트초콜릿 조각을 뽑아 아그작아그작 씹었다. 자, 황홀한 세계로 빠져 봅시다! 모름지기 케이크는 천천히 음미하면서 먹어야 한다. 한 스푼 푹 떠서 입에 넣고 오물오물. 한없이 부드럽고 달콤한 것이 혀를 희롱한다. 발목이 접질려 잔뜩 성난 새끼 고양이 같았던 몸의 세포가 금세 말랑말랑해졌다. 나를 무장해제시키는 마성의 권력자. 단맛은 코뿔소처럼 저돌적이고 원초적이다. 그 누가 이 맛을 거부할 수 있을까. 다음은 '베리쿠키 아박'. 신제품인가? 처음 먹어본다. 마지막으로 나의 시그니처 디저트 '마스카포네 티라미수'. 다 이루었도다!
맛있는 거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나는 음식에 대한 궁금함을 참지 못한다. '열두시에 만나요 부라보콘~.' 어릴 적 이 아이스크림을 먹어보고 싶어 몸살날 지경이었다. 드디어 6학년 봄소풍 때 소원을 풀었다. 학교 앞 점방에서 그것도 두 개나. 하나에 50원이었나? 친구들이 앞에서 침을 삼키며 구경하는데도 모른 척 했다. 내 먹부림이 인정을 찍어 눌렀다. 마시멜로는 어떻고. 40대 중반에 처음 알았다. TV에서 보고 저게 뭐지? 목화송이처럼 하얀데 무슨 맛일까? 요리조리 검색한 결과 '마시멜로'라고 하는데 그땐 슈퍼에서 팔지 않았다. 내가 어디가야 살 수 있을까 궁금해 하자 언니가 회사 동료들한테 물어봤단다. 대형마트에 가 보라고. 스펀지처럼 폭신폭신하면서 식감이 묘했다. 요즘도 종종 한 봉지 뚝딱.
깁스는 풀었지만 발목은 여전히 치료 중이다. 언제쯤 산에 갈 수 있을까. 출퇴근이 고난의 행군과 다를바 없다. 넘어진 김에 쉬었다 간다고, 시간이 약이라고 애써 위안 삼는다. 지난주 퇴근길에 편의점에 들러 로또를 사다가 번쩍 생각났다. '두바이 초콜릿'. "8월에 나와요. 저도 어떤 맛인지 궁금해요." 알바생이 맞장구치면서 활짝 웃었다. 요즘 디저트 덕후들에게 이 초콜릿이 난리다. 8월이 온다. <지방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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