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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으 돈 묵기 어려분기라. 한 사십년 됐제. 힘들어도 돈을 베니 좋제. 손주들 용돈도 주고." 일당은 다 다르다. 굴을 깐만큼 받는다. 이것을 '돈내기'라고 했다. 한달 정도 하면 웬만큼 익숙해지지만 하루종일 서서 하는 고된 작업이어서 이 일을 하려는 사람이 없다. 그러고보니 동남아 노동자들이 많이 보였다. 지금은 농촌이건 어촌이건 외국인 노동자 없이는 일이 안되는 현실이다. 한국 남자와 결혼한 언니를 따라 베트남에서 왔다는 갓 스물 넘은 '애기'의 굴 까는 손끝이 야무졌다.
강구안은 여행자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다. 그런데 확 달라졌다. 말끔하게 새단장된 모습이었다. 중앙엔 '선박 접안 금지구역'이라는 표지판이 있었다. 전엔 고깃배가 꽉 들어차고 갈매기 울음소리가 요란해 장관이었는데. 옛 모습이 사라지는 걸 보면 가슴이 휑해진다. 여행자의 이기심일까. 동피랑에 사는 할머니는 서른 다섯에 혼자돼 어린 6남매를 키우느라 안해 본 일이 없다. 앞니가 다 빠지고 손은 갈퀴처럼 억세고 시커멨다. 그 손으로 자식들 먹이고 키웠다. 주절주절 얘기를 들려주는 할머니는 젊은이 못지 않게 정신이 짱짱했다. 엄마 생각이 났다. 치매를 앓는 엄마는 내가 집에 가면 "네가 누구냐?" 그러신다. 할머니에게 빵을 드리자 활짝 웃으며 "저녁 잘 묵고 잘 가그라" 라며 손을 흔들었다.
강구안 근처 굴요리 식당에 들어갔다. 배도 고프고 굴요리에 대한 기대로 입안에 침이 고였다. 굴밥과 굴 무침, 굴전 그리고 해물된장찌개가 나왔다. 뭔가 쌔앵 했다. 굴밥 굴이 다 어디갔지? 식어빠진 굴전은 어제 부친 건가? 해물된장찌개는 국적불명의 맛이고. 밥을 겨우겨우 먹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서 손님이 생굴을 찾자 종업원이 지금은 식중독 위험이 있어 메뉴에 없다고 했다. 옴마, 나 굴 작업장에서 생굴 먹었는데. "생굴을 드셨다고예? 마 믄일 읎길 바랄 뿐입니더."
밥을 맛없게 먹어서인지 노로 바이러스 걱정 때문인지,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했다. 버스터미널 화장실에서 큰 일을 보고 싹 비워내서인지 조금 안심이 됐지만 그래도 불안했다. 오만가지 상상을 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 안에서 막 토하고 설사하면 어쩌지? 식중독은 수도꼭지 틀어놓은 것처럼 물 설사를 좍좍 한다던데. 생각만 해도 눈앞이 노래졌다. 중간에 내릴 수도 없는 상황이다. 차에 올라타서 기도했다. 나무관세음보살, 인샬라, 주여! 기도가 통했나. 아무일 없이 대전에 도착했다. 알고 보니 노로 바이러스는 하루나 이틀 후에 증세가 나타나는 거였다. 조마조마했지만 다다음날까지 별일 없었다.
여자를 꽤나 밝힌 카사노바는 굴을 무지막지하게 먹었다. 굴은 남자에게 좋다고 한다. 언제 한번 카사노바를 소환해 굴먹기 내기를 해볼까. 다음엔 추위가 쨍하는 한겨울에 통영 굴을 제대로 먹어야겠다. <지방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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